최경환 또 임금인상론… 재계 “최악 타이밍”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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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새 3차례 임금인상 강조 왜?

“적정 수준의 임금 인상을 통해 가계소비를 촉진해야 합니다.”

12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다시 한번 임금 인상을 촉구하며 기업들을 압박하고 나섰다. 4일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조찬 강연에서 임금 인상의 필요성을 거론한 이후 이달 들어서만 3번째다. 역대 정부 경제팀의 수장들이 기업 활동에 장애요인이 될 수 있는 임금 상승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을 고려할 때 이례적인 행보다.

기업들은 경영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고용 및 투자 확대와 임금 인상이라는 상충된 요구를 하는 데 대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경기 부양의 비용과 책임을 기업에 모두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 경기 부양-노동개혁 노린 임금 인상 요구

최 부총리가 임금과 관련한 발언을 처음 내놓은 것은 부총리 후보자 신분이던 지난해 7월 인사청문회 당시였다. 청문답변서에서 최 부총리는 “가계소득 증대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시키자는 취지에 공감한다”며 “최저임금 상승,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을 포함한 방안을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론적으로 임금 인상은 ‘인플레이션 정책’을 통해 기업 생산과 민간 소비를 확대하고 세수까지 늘린다는 ‘최노믹스’의 필요조건이다. 인플레이션을 통해 생산, 소비, 투자를 확대시킬 경우 중산, 서민층이 물가 상승의 고통을 집중적으로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임금 인상이 수반돼야 한다.

또 수출 주도의 성장이 벽에 부딪친 상황에서 내수 중심으로 경제정책의 큰 틀을 바꾸는 데에도 역시 임금 인상이 필요하다. 성장의 과실이 기업에만 쌓이고 가계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사회적 여론이 커지는 데 대한 대응이기도 하다. 특히 과도한 복지 확대로 재정에 구멍이 난 상황에서 기업의 힘을 빌려 소비를 회복시키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와 함께 최 부총리의 임금 인상론이 노동시장 개혁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카드’라는 해석도 나온다. 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3∼4월에 통상임금, 탄력 근로시간제, 정년 연장 및 임금피크제 등 노동계와 기업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제도 개편을 집중 추진할 예정이다. 노동계에 임금 인상이라는 당근을 먼저 제시함으로써 노동시장 개혁의 명분을 확보하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 정부발(發) ‘관제 춘투’ 조짐

정부가 먼저 임금 인상을 강조하고 나서면서 다음 달부터 입금 협상에 돌입하는 기업들은 노사 갈등이 예년보다 심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노동계의 요구 수준이 종전보다 높아지면서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부 정책이 촉발한 임금 인상 투쟁이라는 뜻에서 ‘관제 춘투(春鬪)’라는 말까지 나온다.

중견 조선업체인 A사의 한 임원은 “금속노조가 부총리 발언을 근거로 꽤 높은 임금 인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경우 임금 협상에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 회사도 문제지만 임금 압박으로 하청업체들의 경영이 어려워지면 원청업체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재계에서는 이처럼 최 부총리의 잇따른 임금 인상 발언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상당수 기업들은 지난해 실적이 부진했던 데다 올해도 경영 여건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정부의 압박성 요구를 못 들은 체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최근 보도된 임금 동결 방침과 관련해 “사실과 다르다”며 부랴부랴 해명에 나선 것도 이런 맥락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관계자는 “정부가 불가피하게 임금 인상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최악의 타이밍”이라며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이 임금 인상 때문에 또다시 부담을 떠안게 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더욱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도 이날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정부나 정치권은) 기업인의 노동선택권을 보호해 달라”며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면 기업인들이 다른 대안을 모색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종=홍수용 legman@donga.com / 정세진 기자
#최경환#임금인상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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