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회오리’ 신일산업, 55년 경영권 바뀌나

동아일보 입력 2014-03-25 03:00수정 2014-03-25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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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호지분 11.3% 확보 슈퍼개미 3인… 28일 주주총회서 오너측과 격돌 선풍기 브랜드로 널리 알려진 신일산업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기존 경영진은 “죽을 고생을 하면서 기업을 겨우 살려놨더니 기업사냥꾼들이 경영권을 빼앗아가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경영권 교체를 시도하는 측에서는 “20년 동안 배당 한 번 못한 경영진이 주주들에게 기업사냥꾼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맞선다.

결전일은 28일로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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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생활가전 분야의 대표적 중견기업인 신일산업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 ‘슈퍼 개미’들의 선전포고

지난달 17일 충남 천안에서 공인노무사로 일하는 황귀남 씨(52)가 신일산업 주식 260만 주(5.1%)를 확보하고 경영 참여를 선언했다. 황 씨는 자신을 포함한 3인의 우호지분이 11.27%에 이른다는 사실을 금융감독원에 신고하고 이번 주총에 이사 5명을 추천했다. 아울러 정관개정안도 제출했다.

이번 주총의 표 대결에서 황 씨가 승리하게 되면 신일산업의 경영권이 55년 만에 바뀐다.

주가는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된 11일 이후 4일 연속으로 가격제한폭까지 상승하는 등 급격한 오름세를 타고 있다. 1500원대의 주가가 한때 2400원대까지 치솟았다. 회사 측의 유상증자 선언으로 다소 밀리는 바람에 24일 종가 기준으로는 2050원이다.

신일산업이 적대적 인수합병(M&A) 논란에 휩싸이게 된 것은 2004년 자본잠식에 이른 경영상태를 개선하는 와중에 2세 경영인인 김영 회장(60) 등 오너의 우호지분이 9.9%로 감소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다.

현 경영진은 황 씨를 비롯한 공격자 측이 주로 충남 천안 지역에 사는 사실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지난해 신일산업은 선풍기 등의 국내 제작 비중을 높이기 위해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가산리 1만여 m² 부지에 생산 공장과 물류센터를 신축했다. 이 투자가 적대적 M&A 공세를 촉발했다는 것이 현 경영진의 시각이다. 이번에 황 씨 측에서 사내이사로 추천한 한 인사는 신일산업에 가산리 공장 터를 매각한 인물이다. 신일산업 측의 천안 지역 투자를 보고 황 씨 등이 단기 차익을 얻기 위해 M&A에 나섰다는 주장이다.

송권영 신일산업 대표(66)는 “경영권 공격자 측이 추천한 이사 후보들의 이력, 이들이 작년 말부터 조금씩 지분을 매입해 온 사실 등을 종합해 보면 사실상 시세차익을 노린 작전 세력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황 씨는 펄쩍 뛰었다. 황 씨는 2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영이 악화돼 20년 이상 주주 배당조차 하지 못한 현 경영진이 대주주에게 작전 세력이란 딱지를 붙일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매도자 경영 참여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 황 씨는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들은 신일산업의 중국 투자 실패 원인과 운영자금의 사용처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면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 주주들의 선택은?

신일산업은 1959년 고(故) 김덕현 명예회장이 창업한 이래 한 번도 경영권이 바뀌지 않았다. 1980년대까지는 서울, 구미, 안산 등의 생산 공장에서 1500여 명의 종업원이 일할 정도로 규모를 늘렸다. 1990년대 초중반에는 국내 선풍기 5대 가운데 2대가 ‘신일’ 로고를 달 정도로 전기모터와 생활가전 분야의 독보적 위치에 올랐다. 하지만 이후 임금 상승, 저가 중국 제품, 유통시장 다변화 등의 악재로 성장세는 주춤했다.

그러다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닥친 뒤 당시 금융기관들이 국내 제조업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본격적인 채권 회수에 들어갔다. 경영진은 장충동 본사 사옥과 7만여 m²의 안산 공장 부지를 팔고, 오너는 사재(私財) 57억여 원을 경영자금으로 투입하는 등 회사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결국 직원을 10분의 1로 줄이고 직원들이 퇴직금을 반납하는 등 갖은 고생 속에 가까스로 회사를 정상화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오너 지분이 10% 이하로 대폭 줄어 M&A의 타깃이 된 것이다.  
▼ 구조조정후 ‘알짜’ 변신… 매출 3년새 2배 ▼

신일산업은 수년 전부터 경영상태가 개선되고 있다. 당초 에어컨에 밀릴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선풍기 수요가 지속돼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또 제습기도 히트를 치면서 회사 부활에 힘을 보탰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국산 생활가전을 다시 찾는 추세가 완연해 전반적인 분위기도 좋다. 매출액은 2010년 680억 원에서 지난해 1202억 원으로 2배 가까이로 늘었다. 순이익도 같은 기간 34억 원에서 69억 원으로 늘었다. 최근 5년간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28일 주총에서 승패가 어떻게 갈릴지는 미지수다. 신일산업은 정관에 M&A에 대비해 중도 해임당하는 이사에게는 20억 원의 퇴직보상금을 지급하는 ‘황금낙하산’ 제도를 뒀다. 새 경영진이 와도 함부로 이사를 바꿀 수 없게 한 것이다. 또 발행주식 총수의 70% 이상과 출석한 주주의 90%가 찬성해야 이사를 해임할 수 있게 하는 ‘초다수 결의제’를 넣었다. 2004년 금호전기의 M&A 시도를 방어하면서 생긴 조항이다.

신일산업 측은 이 조항들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경영권을 방어할 수단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송 대표는 “이제야 배당도 할 여력을 갖췄고 미뤄둔 TV 광고도 재개하는 등 국내 중견 제조업의 대표 주자로 역할을 다할 것”이라며 “주주들이 올바른 판단을 내려줄 것으로 믿는다”고 호소했다.

반면 황 씨는 “현재 이사회에 주주 권익을 대표할 만한 인물이 없어 벌어진 일”이라며 “현 경영진보다 기업 가치를 높일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신일사업#우호지분#슈퍼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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