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값 폭락… ‘큰 사과’ 실종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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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태풍의 역설… 풍년이 가져온 두가지 풍경

지난해 한반도 기후는 평온 그 자체였다. 여름이면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던 태풍이 한 차례도 없었다. 가뭄과 홍수도 심하지 않았다. 농민들 사이에서는 “1970년대 이후 이런 날씨는 처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온화한 기후는 자연스레 풍년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다. 바람은 현실이 됐다. 지난해 농산물 수확량은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풍년의 기쁨은 곧 근심으로 변했다. 대풍으로 크게 늘어난 채소 공급량은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다. 이른바 ‘무(無)태풍의 역설’이 나타난 것이다.

당근 20kg(상등급 제품·서울 가락동시장 경매가 기준)의 1월 평균 가격은 1만5994원. 1년 전 1월 1∼21일의 평균 가격은 8만9660원이었다. 가격은 무려 82.2% 폭락했다. 농산물 시장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표기가 잘못된 건 아닌지’ 의심할 정도다. 당근뿐만이 아니다. 거의 모든 채소 가격이 1년 전보다 크게 떨어졌다.

배추의 1월 평균 가격(상등급 제품·가락동시장 경매가 기준)은 10kg에 4082원으로 지난해 1월(1∼21일 평균) 9418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무도 마찬가지다. 18kg 경매가격이 4982원으로 지난해 1월 9590원에 비해 48.1% 떨어졌다. 시금치, 대파, 양배추, 적상추 등 식탁에 자주 올라가는 채소들의 가격도 일제히 하락했다.

소비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농민들은 그만큼 울상이다. 앞으로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이 적다는 게 더 우울하다. 김진석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유통정보팀장은 “채소의 지난해 생산량이 전년보다 종류별로 최소 30% 이상씩 늘면서 적정 생산량을 넘어섰다. 채소는 소비량이 갑자기 늘기도 힘들어 당분간 가격 반등은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와 공공기관들은 지난해 김장철을 맞아 배추와 무를 비롯한 채소들을 대량으로 구입해 복지시설에 나눠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김장철도 지나버려 마땅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무태풍의 역설은 과일 시장에도 나타났다. 태풍이 닥치면 열매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지난해에는 태풍 피해가 거의 없었던 탓에 낙과(落果)가 줄었다. 나무 한 그루당 열매가 많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열매가 흡수하는 영양분이 줄어들어 크기가 고만고만해진다. 그 결과 상품성이 좋은 대과(大果)의 수가 감소했다. 즉, 전체적인 과일 생산량은 늘었지만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큰 과일’의 수확량은 줄었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과일은 사과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특등급 대과로 이뤄지는 사과 선물세트(11개)의 가격은 8만5000원으로 지난해보다 5000원 올랐다. 이에 비해 일반 사과 가격은 일제히 하락했다. 공급량이 많아진 탓이다.

흥미로운 건 사과와 더불어 대표적 설날 과일인 배는 크기가 크더라도 가격이 내렸다는 점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2012년 태풍 피해로 지난해 설날을 앞두고 배 가격이 이례적으로 비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크기가 큰 배의 가격이 상승했지만 지난해 가격에는 못 미친다는 뜻이다. 또 배는 사과만큼 크기 차이가 크지 않아 가격 차이도 많이 나지 않는다는 점을 이유로 들 수 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채소값 폭락#풍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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