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 사장 “가정용 백열전구는 꺼지지만… 장식용은 계속 불 밝힐것”

  • 동아일보

■ 마지막 생산업체 ‘일광’

국내에 마지막 남은 가정용 백열전구 생산업체인 일광의 직원이 19일 가정용 백열전구를 생산하고 있다. 수요가 많지 않아 생산라인을 놀리는 날도 많다. 일광은 가정용 백열전구를 퇴출시키기로 한 정부 정책에 따라 올해까지만 이 라인을 가동할 계획이다. 일광 제공
국내에 마지막 남은 가정용 백열전구 생산업체인 일광의 직원이 19일 가정용 백열전구를 생산하고 있다. 수요가 많지 않아 생산라인을 놀리는 날도 많다. 일광은 가정용 백열전구를 퇴출시키기로 한 정부 정책에 따라 올해까지만 이 라인을 가동할 계획이다. 일광 제공
‘인류의 두 번째 불’로 불리며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 온 가정용 백열전구가 첨단 조명들에 밀려 ‘에너지 먹는 하마’라는 오명을 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 한 개에 1000원 정도인 백열전구는 한 개에 1만 원 안팎인 발광다이오드(LED)보다 훨씬 싸지만 에너지 효율은 8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이 때문에 2007년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에서 백열전구를 퇴출시키기로 했고, 우리 정부도 가정용 백열전구의 생산과 수입을 전면 중단키로 했다. 지난해 소비전력 70W 이상 150W 미만 가정용 백열전구의 퇴출에 이어 내년부터 25W 이상 70W 미만 제품도 사라지게 된다. 크리스마스트리 등에 쓰이는 25W 미만 장식용 제품만 남게 되는 것이다. 토머스 에디슨(1847∼1931)이 백열전구를 발명한 지 135년, 국내에 수입된 지 127년 만의 퇴출이다.

국내에 마지막 남은 백열전구 생산업체인 일광 임직원들의 마음은 요즘 착잡하다. 18일 찾은 대구 달서구 파호동 일광의 김홍도 사장(55·사진)은 “아버지가 회사를 처음 세운 1962년부터 50년 이상 가정용 백열전구를 생산했는데 더는 못 만든다고 생각하니 섭섭함이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백열전구는 수요가 많지 않은 데다 해외에서 재료를 사오는 것도 쉽지 않아 이미 공장을 풀가동하지 않고 있다. 일광을 방문했을 때도 가정용 백열전구 생산라인은 멈춰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장식용 백열전구 생산라인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공장을 둘러보던 김 사장은 “에디슨 전구로 불리는 가정용 백열전구는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며 일했던 산업화 시기의 아이콘이었다”고 말했다.

최종석 상무(51)는 사흘 전 완성한 백열전구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밝은 곳에 비춰 보고 있었다. 그는 “유리에 금이 간 곳은 없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있다”며 “백열전구는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백열전구는 크게 필라멘트에 전류를 흐르게 하는 계선 공정, 선을 유리구 안에 넣고 마감하는 실링 공정, 유리 안 공기를 빼내는 배기 공정 등으로 이뤄진다. 특별히 복잡하지는 않지만 손이 많이 간다.

1970년대만 해도 국내에는 30여 개 업체가 백열전구를 만들며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형광등이 보급되면서 제조업체는 15개 안팎으로 줄었다. 1990년대 말에는 GE, 오스람, 필립스 등 수입 제품이 인기를 모으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대부분의 회사가 문을 닫았다. 2010년에는 일광과 함께 끝까지 버티던 다른 회사도 백열전구 사업을 접고 형광등 전문 업체로 변신해 지금은 일광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김 사장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아버지에 이어 사장이 됐다. 다른 사업을 권하는 지인도 많았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백열전구가 주는 은근하고 따뜻한 노란빛 특유의 느낌은 어떤 첨단 조명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는 “2000년대 초반에는 매달 200만 개 이상 만들었는데 지난해에는 한 해 동안 400만 개를 생산했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2000년 80억 원이던 일광의 매출은 지난해 60억 원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가정용 백열전구가 회사 매출에서 차지하던 비중도 70%에서 약 30%로 감소했다.

김 사장은 아직도 가정용 백열전구를 필요로 하는 곳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재래시장이나 포장마차 상인들에게는 값싸고 교체하기 편한 백열전구만 한 게 없다는 것이다. 가정용 백열전구는 다른 조명과는 달리 전압이 불안정할 때도 100% 작동하기 때문에 원자력발전소, 해군본부 등 국가기관에서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관도 내년부터는 형광등이나 LED등으로 바꿔야 한다.

일광은 가정용 백열전구 중심이던 사업구조를 장식용 백열전구로 등으로 개편해 백열전구 사업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김 사장은 “탄생한 지 13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태초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공산품은 백열전구가 유일하다”며 “백열전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앞으로도 계속 사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구=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김홍도 사장#일광#백열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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