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Up]3년 이자가 3개월 이자보다 싸다면 믿겠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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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단기 금리 1년째 엎치락뒤치락… 금리 왜 이러나

문제 1) 당신에게 여윳돈 1000만 원이 있다. 3개월 뒤 갚겠다는 A와 3년 뒤를 약속하는 B가 있다. 누구에게 1000만 원을 빌려주는 게 이익인가?

문제 2) B가 당신에게서 돈을 빌리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은가?


요즘 이런 문제가 제기된다면 답하기가 곤란할 것으로 보인다. 이론과 현실이 다른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1번 문항의 정답으로 A를 제시할 것이다. 기간이 길면 돈을 떼일 수 있는 등 리스크가 크고, 기간이 짧으면 그만큼 빌려준 돈으로 다른 투자를 할 수 있어 기회비용도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또 2번의 정답으로 대부분의 교과서는 ‘높은 이자를 주는 것’이라고 밝힐 것이다. 리스크가 큰 만큼 높은 금리를 주는 게 합리적이라는 논리에서다.

하지만 현재 한국 금융시장에서 진행 중인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 3년 뒤에 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채권 금리가 3개월 회수 채권보다 더 낮다. 2일 현재 금리(연리 기준)는 ‘3년 만기 국고채(국고채)’가 2.78%, ‘91일 만기 통화안정증권(통안채)’은 2.79%였다. 3개월 만기 채권 금리가 3년 만기 채권보다 0.01%포인트 더 높았다.

이 같은 국고채와 통안채의 금리 역전현상은 지난해 11월 7일 시작된 이후 10여 차례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하며 약 1년 동안 지속되고 있다. 2007년 이후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는 일은 4차례 있었지만 모두 한 달 안에 해소됐다. 이번처럼 1년 이상 지속되는 것은 처음이다.

장단기 금리 역전현상이 장기화되면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통화정책의 효율성 저하나 금융 중개 기능 붕괴, 기업구조조정 지연, 장기채 투기 등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2009년 10월 기준 국고채 금리(4.62%)는 통안채(2.22%)보다 2.4%포인트 높았다. 하지만 이를 정점으로 두 채권의 금리 차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 한계기업들 빚 연명 쉬워져… 구조조정 기회 놓칠수도 ▼

국고채 금리는 올해 7월 6일에 3.23%를 보이며 기준금리(당시 3.25%) 밑으로 떨어졌고, 지난달 10일에는 사상 최저 수준인 2.71%까지 내려갔다. 반면 통안채는 올해 7월 12일부터 10월 10일까지 3개월 정도 기준금리 밑으로 떨어졌지만 기준금리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미래 경제가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금리 인하 기대감과 장기채권에 대한 수요 증가이다.

미래 경기가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면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 조치가 취해질 것으로 예측하기 십상이다. 이런 이유로 미래의 단기 금리가 현재의 단기 금리보다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면 장기 금리가 단기 금리보다 낮게 형성된다. 실제로 지난해 중반 이후 세계 경제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미국 등 선진국과 브라질, 호주 등 신흥국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현재 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남선우 한국은행 자본시장팀 과장은 “과거에는 기준금리가 인하되거나 시장의 기대 조정으로 장단기 금리 역전현상이 단기에 해소됐다”며 “이번에는 경기 침체 장기화 우려에 따른 추가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과 외국자본의 유입 등이 겹쳐져 역전현상이 당분간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장기채 수요 증가도 요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안전 자산은 줄어든 가운데 한국채권이 안전자산으로 인식된 것도 금리 역전현상을 불러왔다. 외국인 투자가들이 앞다퉈 한국의 장기채권에 투자하면서 장기금리를 끌어내리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안전 자산은 2007년 말 21조 달러에서 지난해 말 14조 달러로 크게 감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들의 잇따른 국가 신용등급 강등, 재정건전성 악화 등의 영향으로 미국 자산유동화증권(ABS), 이탈리아와 스페인 국채 등이 안전자산에서 제외됐다.

반면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안전자산에 대한 투자 수요는 급증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 투자가들의 눈길을 끈 것이 한국의 국채다. 한국의 양호한 재정건전성과 국가신용등급 상향 조정 등으로 투자가치가 상승한 것이다. 실제로 외국인의 한국 국채 보유 규모와 비중이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9월 말 현재 외국인의 국내 채권 보유잔액은 88조 3000억 원으로 2009년 말(56조4000억 원)에 비해 56%(31조9000억 원)가량 늘었다. 이 기간에 만기가 상대적으로 긴 국채는 33조7000억 원이 증가한 반면 통안채는 3조4000억 원이 줄었다. 회사채 등 기타 채권도 1조3000억 원이 늘어났다.

여기에 국내 투자자들의 채권 선호 현상도 기름에 불을 붙인 꼴이 됐다. 저축은행 구조조정과 부동산시장 침체, 주식시장의 급등락 등으로 마땅한 투자대안이 없어진 탓이다. 금전 신탁 및 채권형 펀드로 자금 유입이 늘면서 채권 순발행액은 올 상반기에만 100조 원으로 지난해 전체 물량(139조 원)의 70%를 넘어섰다.

○ 금리 역전으로 부작용 크다

장단기 금리 역전현상으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장기 금리의 하락으로 은행 대출이 많은 가계의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우려되는 부작용이 더 많다. 우선 저금리로 인해 유동성이 증가하면서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이 늦춰지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한계기업이 제때 정리되지 않고 금융기관의 빚으로 연명하다 문을 닫으면 금융회사에 미치는 충격은 더 커질 수 있다.

금융회사의 위험도 증가한다. 단기로 돈을 조달해서 장기로 굴려야 하는 은행은 조달 비용이 기대수익보다 커져 적자를 낼 개연성이 크다. 미래에 연금이나 보험금을 되돌려줘야 하는 보험회사도 마찬가지 위험에 노출된다.

장기 금리가 떨어지면서 30년 국고채에 대한 투기 수요도 발생하고 있다. 금리가 떨어지면 채권 값이 오를 수 있다는 점을 노리고 장기채에 투자하는 수요가 늘고 있는 것.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에 열린 국정감사에서 “장단기 금리 역전현상으로 장기채권의 투기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을 정도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장단기 금리 역전현상이 지속되면 시중자금의 단기부동화가 심화돼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이 저하될 수 있다”며 “기준금리를 더 낮추거나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게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채널A 영상] 역대 두 번째 큰 흑자…경기반등 신호탄?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장단기 금리#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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