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완화 입씨름만 10년째… 눈앞의 일자리도 못챙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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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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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병원 하나 없는 송도… GCF 유치 계기로 본 규제 실태


의료산업 선진화, 외국인 환자 유치를 내걸고 정부가 투자개방형 병원(영리병원)을 짓겠다고 처음 선언한 것은 2002년이었다. 당시 제정된 경제자유구역특별법에는 영리병원 설립을 위한 기초적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국제도시’를 표방하는 인천 송도는 유치 후보 1순위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후 10년간 송도는 물론이고 전국에 단 한 곳의 영리병원도 들어서지 못했다. 현행 제도만 놓고 보면 ‘송도의 영리병원’이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닌데 까다로운 설립조건과 정치권 및 이익단체의 반발 등에 밀려 논의 자체가 끝도 없이 표류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외국인은 영리병원, 내국인은 비영리병원에서 전담하는 ‘혼합형 병원’이란 대안까지 나왔지만 이마저도 일부의 반발에 부딪혀 전망이 밝지 않은 상황이다.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 유치를 계기로 송도가 진정한 국제도시로 비상할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제도나 사회적 인프라는 아직 걸음마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 송도의 10년 묵은 서비스업 규제


‘10년 묵은 규제’는 교육 분야도 마찬가지다. 송도가 2003년 국제도시로 지정된 이후 정부는 외국 교육기관이 ‘결산상 잉여금’을 해외로 송금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겠다고 수차례 밝혀 왔다.

한국에서는 학교의 영리행위가 법으로 금지돼 있어 외국기업들이 교육투자를 꺼리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외국자본이 비싼 수업료를 받아내 해외로 빼 간다”는 반대 여론에 밀려 지금까지도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기업이나 투자자가 송도에 외국인을 포함해 국내 고소득층, 중국 출신 유학생 등을 위해 외국어로 교육하는 영리 교육기관을 세우자는 식의 논의는 아예 불가능한 형편이다.

경제자유구역의 전체적인 규제완화 속도도 거북걸음 수준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올해 4월 기업투자와 서비스산업 관련한 규제들을 묶어 ‘꼭! 풀어야 할 10대 규제’라는 이름의 소책자를 발간하고 규제완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현재까지 완화가 현실화된 규제는 그중 2건에 불과하다.

중앙정부도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들이 모여 서비스산업 규제완화에 나름 노력을 들였지만 핵심 규제는 손보지 못한 채 지엽적 문제만 건드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나마 정부가 서비스산업 육성을 위해 제출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18대 국회에서는 폐기됐고 19대 국회 들어서도 논의가 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익단체의 반발에 막혀 핵심 규제들을 풀지 못하면 아무리 번듯한 국제기구를 유치해도 고용 창출이나 내수 진작 등 경제효과를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규제를 풀어줘도 제조업 위주로만 규제를 풀어주는 것이 문제”라며 “송도를 국제도시로 만들려면 영리병원 문제를 비롯한 관광, 의료, 컨벤션 산업의 규제를 푸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자가 돈을 쓰는 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인식이 일자리 창출의 기회를 스스로 없애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홍기택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해외유학이나 어학연수를 위해 외국에 나가는 학생들을 생각하면 내국인의 국제학교 입학도 마냥 비난만 할 일은 아니다”라며 “돈 있는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지 않고 국내에서 소비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 대선후보들은 신중 모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측은 외국인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학교, 병원 등이 송도에 진출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다만 박 후보 비서실의 강석훈 의원은 “교육, 의료 분야는 공공성도 중요한 부분인 만큼 국내의 근간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규제완화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측도 GCF 유치를 환영하지만 규제의 대폭 완화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의료, 교육 분야처럼 국민들의 기본 권리와 직접 관련이 있는 서비스산업에 대해선 공공성과 사업성이 조화를 이루도록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 측은 “우리 경제가 계속 발전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도 정보통신, 법률, 의료 등 지식서비스산업 부문에서 규제 개혁은 매우 중요하다”면서도 “교육, 의료 분야에서의 급속한 규제완화는 우리 공교육 체계와 국민건강보험 체계를 위협할 우려가 있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모든 유력 후보들이 서비스 규제완화란 ‘총론’에는 찬성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반대가 예상되는 민감한 부분에선 발을 빼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의료, 교육 등 고부가가치 산업의 규제를 과감하게 풀지 않으면 대선후보들의 일자리 창출 공약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선후보들이 온갖 일자리 창출 공약을 내걸면서도 일자리 창출의 열쇠인 ‘서비스산업 개혁’을 빠뜨리는 건 말장난이나 다름없다”며 “정부의 규제와 각종 이익단체의 요구를 넘어서는 과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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