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강한 기업]위기땐 역발상… 국산화-한류바람 일으키며 ‘긴 터널’ 통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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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위기 4년을 기회로 만든 87개 기업의 DNA


글로벌 경제위기는 유럽발(發) 재정위기를 거치며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 기업들 역시 이 불황의 긴 터널을 지나면서 희비가 엇갈렸다.

동아일보가 기업분석업체인 FN가이드(대표 김군호)와 함께 2008∼2011년 국내 상장기업의 매출액, 영업이익, 순이익 증가율을 비교한 결과 지난 4년간 업종 평균을 뛰어넘는 수익 증가율을 보인 87개 기업 중에는 2차전지 부품소재기업인 피엔티처럼 해외 업체에 의존하던 기계를 국산화한 기업도 있었다. 또 초코파이로 중국 시장에서 명성을 쌓은 오리온은 ‘핵심 제품에 집중해야 한다’는 불황기 경영원칙을 깨고 ‘제품 다각화’라는 역발상으로 성과를 내기도 했다.

과감한 투자와 연구개발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뿐 아니라 이들 기업에 부품 및 소재를 공급하면서 글로벌화한 중소·중견기업 역시 탄탄한 수익 증가세를 보였다.

○ 핵심 부품 국산화한 중소기업

“정말 국내 중소기업이 그런 제품을 만들 수 있어요?”(국내 B기업)

“이미 국내 굴지의 A기업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한 번 써보고 판단해 주십시오.”(피엔티)

경북 구미에 있는 부품소재기업인 피엔티는 2009년 2차전지 소재인 분리막과 양극재를 만드는 기계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국내 대기업들도 이 회사의 제품을 써보고는 해외업체에서 수입하던 부품량을 줄이면서 피엔티 제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국내 대기업들의 주문이 늘면서 중국 일본 등의 2차전지 업체에서도 문의가 늘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2009년 영업이익이 전년에 비해 215.6% 늘어난 데 이어 2010년과 2011년에도 전년 대비 각각 61.5%와 73.6% 증가했다.

김경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2009년 이후 매년 자동차의 국내 생산량이 꾸준히 늘었음에도 지난해 말부터 핵심 자동차 수입부품의 수입량이 줄고 있는 것은 이번 위기를 거치면서 자동차 부품을 포함해 국내 중소·중견기업의 핵심 부품소재의 제조 능력이 크게 향상됐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 ‘하유미팩’으로 대기업에 ‘펀치’

불황기에는 핵심 제품의 역량에 집중해 제품을 개발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오리온은 이번 위기에서 오히려 제품의 카테고리를 확대했다. 그 결과 2009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65.8% 늘었다. 초코파이를 내세워 중국인에게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킨 뒤 이를 바탕으로 껌, 스낵, 비스킷 등 다양한 카테고리 상품을 내놓은 게 적중한 것이다.

중소화장품 업체인 제닉은 대기업이 주도하던 화장품 시장에 연예인 하유미를 홈쇼핑 모델로 내세워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 회사는 시트 타입의 마스크가 대세를 이루던 팩 시장에 고체 성분으로 피부에 닿으면 녹아내리는 하이드로겔 성분의 마스크팩으로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이 제품은 일명 ‘하유미팩’으로 불리면서 불황기 대박상품으로 떠올랐다. 회사의 영업이익도 2009년과 2010년에 전년에 비해 각각 308.7%, 328.7% 늘었다.

이번 불황기에 과당경쟁에 따른 생산량 감소의 반사효과를 극적으로 본 기업도 있다. 나일론 원료의 일종인 카프로락탐을 생산하는 카프로는 2009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4000% 늘었다. 과거 t당 2000달러에 머물던 제품 가격이 3500여 달러로 급등한 영향이다. 배석준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시황이 좋지 않아 전 세계적으로 공급량이 줄어든 영향으로 가격이 급등해 실적이 좋아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 대기업과 글로벌화 나선 중소기업

휴대전화 핵심 재료인 연성회로기판(FPCB)의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업체 이녹스. 이 회사의 2008년 영업이익은 약 16억9000만 원이었다. 같은 해 FPCB를 생산하는 인터플렉스의 영업이익은 약 19억7000만 원. 하지만 두 업체의 2009년 영업이익은 이녹스와 인터플렉스가 각각 67억7000만 원과 161억2000만 원으로 껑충 뛰었다. 증가율로 따지면 각각 300.4%와 717.6%에 이른다. 이들의 경이적인 성장 비결에는 스마트폰 시장의 세계적인 리딩컴퍼니로 성장한 삼성전자가 있었다. 같은 시기 영업이익률이 53.5% 늘어난 삼성전자에 FPCB 부품을 공급한 인터플렉스와 인터플렉스에 부품을 납품한 이녹스가 함께 성장한 것이다. 조우형 대우증권 선임연구원은 “세계시장에서 원가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낮은 단가로 부품소재를 공급받은 대기업이 시장점유율을 높이자 부품을 공급한 중소·중견기업도 함께 성장한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현대·기아자동차의 성장으로 현대글로비스와 같은 그룹 계열사도 빠르게 성장했지만 공급업체들도 높은 수익을 올렸다. 현대차에 부품을 공급하는 화신의 연간 영업이익은 최대 161.1% 늘었다.

○ 한류와 스마트폰 열풍도 한몫

불황기를 거치면서 가수 싸이의 소속사이기도 한 YG엔터테인먼트의 성장세도 눈길을 끌었다. YG의 2009년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33.5% 급증한 데 이어 2010년과 2011년에도 각각 전년보다 40%, 47% 늘었다. 2009년 빅뱅, 2011년 2NE1 등 소속 가수들의 해외 진출이 성장동력이 된 것이다. 최근에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빌보드 차트 2위까지 오르면서 YG엔터테인먼트의 주가도 연일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7월 12일 4만6750원이었던 주가는 15일 7만2600원으로 올랐다.

이 밖에 온라인으로 음악파일을 유통하는 로엔도 2009년 SK텔레콤에서 멜론 서비스를 인수하면서 급성장했다. 로엔 관계자는 “스마트폰 열풍으로 멜론으로 음악을 듣는 사용자가 많아진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불황기 투자가 즉각적인 성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포스코는 2차 오일쇼크 직후인 1982∼1985년과 1991∼1994년, 2001∼2002년 등 철강업계의 불황기마다 투자 규모를 늘려 성장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포스코는 이번 경제위기에도 매년 4조∼5조 원을 투자했지만 과거와 같은 성과가 즉각 나타나지는 않았다. 방민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위기에서 포스코는 신성장동력 분야인 신소재 분야에 대한 투자에 나섰기 때문에 과거와 같이 단기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채널A 영상] “노하우 공유합니다” 선배 창업자 성공경험 나눠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기업#불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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