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막중공업 조붕구 대표가 2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서울사무소에서 지난해 금융소비자협회를 만들게 된 이유 등을 설명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키코 사태는 비유하자면 쌍꺼풀 수술을 한다면서 결국 장님을 만든 꼴입니다.”
조붕구 코막중공업 대표(47)는 키코(KIKO·환율 변동과 관련된 파생금융상품의 하나) 피해 중소기업들이 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23일 처음으로 일부 승소한 것과 관련해 “이번 판결은 금융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공급자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승소를 해도 이미 많은 중소기업이 문을 닫거나 법정관리에 들어간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조 대표는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부위원장이자 금융소비자협회(금소협) 대표이기도 하다. 금소협은 지난해 저축은행 사태에 이어 신용카드 수수료 논란에서 눈에 띄는 활동을 하는 대표적인 시민단체로 꼽힌다. 공대위와 금소협은 별개의 단체처럼 보이지만 실은 키코라는 뿌리로 연결돼 있다.
2007년 키코에 가입해 연간 매출액과 맞먹는 300억 원을 잃은 조 대표가 사비를 털어 지난해 3월 세운 것이 금소협이다. 그는 금소협을 출범시킨 이유에 대해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키코 문제에서 사실상 손을 놓은 금융당국을 더이상 믿을 수 없었다”며 “지난해 저축은행 비리에 금융감독원 직원이 연루된 사실도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그가 키코와 악연을 맺은 것은 2007년 7월 4대 시중은행인 A, B은행의 두 지점장이 경기 안산시 본사로 각각 찾아오면서부터였다. 이들은 원화가치가 하락하면 기업의 손실이 몇 배로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은 쏙 빼놓은 채 “보험과 비슷한 금융상품”이라며 가입을 권했다. “고객서비스 차원에서 수수료도 안 받는다”고도 했다.
시설 확장을 위해 추가 대출이 필요했던 조 대표로선 지점장들의 강한 권유를 뿌리치기 힘들었다. 그들이 일러주는 대로 달러당 900(하한)∼920원(상한)대로 총 2000만 달러 규모의 키코 계약을 했다. 이듬해인 2008년 초부터 환율이 들썩거리더니 그해 10월 1400원대로 치솟으면서 코막중공업의 손실액도 급증했다.
결국 2008년 350억 원에 이르던 매출액이 2010년 200억 원으로 주저앉았다. 월급을 수개월째 밀리면서 직원 수도 120명에서 40명으로 크게 줄었다. 결국 조 대표는 더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올 3월 법정관리에 넘겼다.
그는 “소송과정에서 은행들이 피해 중소기업을 환투기 세력으로 몰아붙인 데 대해 기업인들은 크게 분개했다”며 “금전적 피해는 물론 명예회복이 이뤄지고 금융당국이 진정한 소비자보호에 나설 때까지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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