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정경준]시마가 하이얼을 주목하는 날

  • 동아일보

정경준 산업부 차장
정경준 산업부 차장
시마 고사쿠는 만화 주인공이긴 하지만 일본 샐러리맨들의 우상이다. 굴지의 전자회사 ‘하쓰시바’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과장, 부장, 전무를 거쳐 2008년 사장에 오른 그는 말한다. “일본은 ‘갈라파고스 제도 같은 특이한 나라’라는 시선을 받고 있다. 모든 기술을 일본 기준으로 만들어 글로벌 전개가 뒤처진 까닭이다. 결국 일찌감치 해외시장을 타깃으로 삼은 한국과 압도적인 차이가 벌어지고 말았다.”

회사 이름을 ‘테콧’으로 바꾸고 ‘섬상’(삼성전자를 지칭)을 따라잡기 위해 절치부심하는 시마 사장의 말은 일본인들이 한국 산업계를 대하는 태도와 상당부분 일치한다. ‘시마 시리즈’의 저자 히로카네 겐시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유럽연합(EU), 미국과 잇달아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며 글로벌 시장 개척에 나서는 것을 거론하며 “한국은 정치적으로도 밀어붙이는 힘이 있어 부럽다”고 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미 여러 해 전부터 한국 기업의 활약을 대서특필하고 있다. 우리의 전국경제인연합회 격인 일본 경제단체연합회 부설 21세기 정책연구소 모리타 도미지로 소장은 최근 ‘2030년대부터 일본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에 역전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해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최근 일본에서 자주 한국이 거론되는 것은 적잖은 의미가 있다. 우리가 단기간에 압축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낸 모델이 바로 일본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일본처럼 주거래은행을 통해 대기업에 한정된 자금을 지원했고, 기업들은 이를 자양분 삼아 쑥쑥 커나갔다. 우리 기업들은 ‘오르지 못할 나무’였던 일본 회사들로부터 한 수 배웠다. 삼성전자는 산요전기와 NEC, 현대자동차는 미쓰비시와 마쓰다, 포스코는 신일본제철을 벤치마킹했다. 그러던 한국 기업 상당수가 ‘과거의 스승’이 경계할 만큼 글로벌 플레이어로 우뚝 섰으니 일본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낄 법도 하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한국 치켜세우기에 즐거워만 하기에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일본 쓰쿠바대 부교수와 경제산업성 연구위원을 지낸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올해 한국의 총선 직전 삼성 사장단협의회에 강사로 나서 일본의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킨 요인으로 ‘6중고(重苦)’를 들었다. 높은 법인세, 과도한 노동규제, FTA 체결 지연, 전력수급 불안, 엔고(高), 자연재해를 말한다. 그는 이어 “이 6중고 가운데 엔고와 자연재해를 뺀 4가지를 한국이 답습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한국도 기업을 옥죄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이 4가지 고통은 이번 총선기간 중 정치권이 내놓은 재벌세, 휴일 근무의 연장근로 포함, FTA 재협상, 원전반대 공약과 놀라우리만치 일치한다. 총선은 끝났지만 이어지는 대선 정국에서 정치인들의 ‘기업 하기 나쁜 나라’ 만들기가 극성을 부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시마 사장의 산파인 히로카네는 “일본이 한국에 자리를 내준 것처럼 한국도 중국에 밀려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일본 사례를 꼼꼼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만화 속의 시마가 앞으로 회장이 된 뒤 섬상이나 PG(작품 속 LG) 대신 중국의 하이얼과 레노보를 주목하는 날이 올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과연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정경준 산업부 차장 news91@donga.com
#시마 시리즈#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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