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13일 국내 기름값 인상이 공급자인 정유회사가 과점 형태로 시장을 지배하는 것에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물가관계 장관회의에서 “유가가 너무 많이 올라 있다”며 “혹시 공급이 과점 형태여서 이런 일이 계속되는지 유통 체계를 비롯해서 제도 개선을 통한 관리 방안에 대해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유가는 발상을 완전히 새롭게 해서 원천적으로 검토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이 특별히 기름값 안정을 강도 높게 주문한 것은 알뜰주유소나 석유 현물거래소 도입 등 기존 유가 대책이 가시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 휘발유 가격은 올해 들어 지금까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올랐다.
○ 석유현물시장 활성화 방안 등 검토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는 바로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대통령이 직접 ‘과점’ 문제를 언급한 만큼 참여 회사에 인센티브를 줘 석유현물시장을 활성화하거나 알뜰주유소가 민간유통사와 손잡고 물량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방안, 주유소에서 혼합 판매 허용을 더 넓히는 방안 등이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석유공사의 역할도 어떤 식으로든 더 커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유류세 인하 외에 단기적으로 성과가 날 만한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 정책 담당자들의 고민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어쨌거나 지금 정유시장이 공급자 위주로 짜인 만큼 시장구조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구체적인 추가방안은 연구를 좀 해 봐야겠다”고 말했다.
정유업계는 납작 엎드렸다. 한 정유사 임원은 “얼마 전에 영업회의를 마쳤는데 다들 영업이익이 나지 않아 난리였다”며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그저 잠자코 있을 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차라리 정유사들이 기금을 만들어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 직접 휘발유나 경유를 살 수 있는 바우처를 제공하는 게 민생에는 더 도움이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월에도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기름값이 묘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이 대통령의 발언 직후 공정거래위원회가 4개 정유사와 2개 액화석유가스(LPG) 업체에 대해 대규모 현장조사에 착수했으며, 관계부처 합동대책반이 구성돼 휘발유값 안정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 “공급업체 4곳이 가격에 영향 못 미쳐”
일부 석유시장 전문가들은 ‘과점이 고유가를 불러 온다’는 이 대통령의 13일 발언에 대해 “생산업체가 4곳뿐이라는 게 무조건 유통에서의 과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문춘걸 한양대 국제금융학부 교수는 “막대한 설비 투자가 필요하다는 특성이 있어 어느 나라에서나 정유업체는 자연스럽게 3, 4개만 남게 된다”며 “그러나 국내 시장은 수입이 완전히 개방돼 있어 이 정유업체들이 시장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유사들의 의도보다는 완전히 공개된 국제가격과 환율에 따라 석유제품 가격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가격 구조가 석유시장만큼 단순하고 투명한 곳도 없다”며 “국내 정유사가 수출을 많이 하는 것만 봐도 국제 시장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있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기름값, 약값, 통신비, 배추를 포함한 농축산물 가격, 공공요금 등 서민 생활과 밀접한 물가 불안 요인을 점검해서 물가 오름세 심리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라. 서민 물가의 구조적 안정화 방안을 강구해 달라”고 주문했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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