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해도 펀드를 환매해서 주가연계증권(ELS)에 들어가겠다는 고객이 많습니다. 전체적으로 코스피 2,000 선을 넘어서면서 위험기피 성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SC은행 박순현 과장)
코스피가 두 달째 2,000대 초반에서 옆걸음치고 있는 가운데 펀드 환매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2월 말 현재 국내외 적립식펀드 판매 잔액은 55조1590억 원으로 전월보다 1조6330억 원 감소하는 등 석 달 연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같은 기간 펀드 계좌 수도 884만8000개로 22만9000개가 줄었다. 2010년 12월 34만4000개 이후 월간 감소 폭으로는 가장 큰 수치다.
○ 주가 2,000 넘자 ‘지금 빠져나가자’
전문가들은 지난해 1,680 선까지 하락했던 코스피가 2,000 선으로 반등한 뒤 크게 오르지도, 떨어지지도 않는 ‘게걸음 장세’가 펼쳐지자 투자자들이 차익실현 타이밍으로 보고 대거 환매에 나서고 있다고 풀이한다. 김철배 금융투자협회 집합투자서비스본부장은 “최근 주가 반등으로 어느 정도 손실 폭을 만회했다고 판단한 투자자들이 환매에 나서고 있는 것”이라며 “특히 2008년 11월 도입된 장기 주식형펀드의 소득공제 혜택 기간이 끝나면서 환매하는 투자자가 많다”고 말했다. 2008년 11월부터 3년 동안 판매된 장기 주식형펀드(적립식)의 소득공제 혜택을 위한 의무 보유기간 3년 시한이 속속 돌아오면서 보험, 은행, 증권사 창구로 고객들 환매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는 얘기다.
주가가 ‘박스권’에 갇혀 상승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도 환매를 부추기는 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증권 배성진 연구원은 “주가가 더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낮아지면서 현 상태에선 기다리는 장기 투자가 의미가 없다고 보는 투자자들이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 환매하지 말고 기다리는 것도 방법
그렇다면 현 시점의 ‘펀드 환매’가 바람직한 것일까. 증권가의 프라이빗뱅커(PB)들은 이미 은행 예금이자의 3∼4배에 이르는 수익을 거둔 투자자라면 환매해도 괜찮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조금 더 기다려볼 것을 권하고 있다. SC은행 박 과장은 “주가가 지지부진하고 미국 경기 둔화로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있지만 미국의 3차 양적완화(QE3)로 돈이 추가로 풀릴 가능성이 남아 있다”며 “지금이 고점이라고 보긴 힘든 만큼 조금 더 기다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주장했다.
고물가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는 한 적립식펀드 외에 마땅한 투자대안이 별로 없다는 점도 펀드 환매를 말리는 이유 중 하나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은행 예금상품의 실질금리가 사실상 마이너스인 데다 부동산시장도 얼어붙은 상황에서 적립식펀드만 한 투자처가 없다는 것이다. 배 연구원은 “펀드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환매를 해도 지금으로서는 특별히 투자를 할 만한 곳이 없다”며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가 계속될 수밖에 없는 환경인 만큼 적립식펀드는 유지하면서 추가로 다른 상품을 저울질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지금 새로 주식형펀드에 투자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타이밍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주가 수준에서 한 단계 오른 국면에 들어가면 너무 늦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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