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강원 횡성군 서원농협의 식품 가공공장에서 직원들이 지역 농민이 생산한 들깨로 들기름을 짜고 있다. 서원농협 관계자는 “이렇게 ‘농산물’을 ‘식품’으로 가공하면 부가가치가 높아져 농민 소득을 몇 배나 더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농협중앙회 제공
농협이 2일 신용(금융)사업과 경제(농산물유통·판매)사업을 분리하는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신용사업에 치우친 사업구조를 바로잡고, 농협 본연의 역할인 ‘농민의 농산물 팔아주기’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이런 가운데 최근 농업계에서 강원 횡성군의 서원농협이 화제다.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서원농협은 우리 농협의 미래상”이라고 말했을 정도. 대체 산골마을의 작은 농협이 왜 ‘스타’로 떠올랐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20일 서원농협을 찾았다.
서울에서 차로 2시간가량 달려 도착한 서원농협의 소재지 횡성군 서원면은 소담하기 그지없는 작은 산골마을이었다. 길이가 채 100m도 되지 않는 마을 중심 ‘번화가’에는 오래된 다방과 이발소, 미용실, 식당 몇 개가 늘어서 있었다. 사방엔 높고 낮은 산맥뿐이었다.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이 마을 농민들은 농산물 판매로 벌써 4년째 연간 3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서원지역 농민 1165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한 서원농협 덕분이다. 이규삼 서원농협 조합장은 “우리 농협은 어떤 농산물이든 조합원이 키워낸 것이라면 100% 책임지고 팔아준다”고 했다. 사업 부진에 고민하는 많은 지역농협은 하고 싶어도 못하는 꿈같은 얘기였다.
이 조합장은 “사실 서원농협도 10년 전에는 다른 농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만 해도 ‘돈놀이(신용사업)’에만 집착하는 부채 덩어리 농협이었다는 것. 그는 “대출금 연체비율이 34%가 넘을 정도였지만 위기감을 느낀 직원과 조합원들이 사업전략을 농산물 판매로 과감히 전환해 회생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서원농협이 농산물 판매 극대화를 위해 쓴 전략은 크게 △계약 재배 △고가 매입 △직거래 △식품 가공 등 네 가지다.
지역의 조합농가들에 상품성 있는 잡곡이나 나물을 심으라고 권하고(계약 재배), 이렇게 생산한 농산물은 무조건 시중가격보다 5% 비싼 값에 모두 사들인다(고가 매입). 서원농협 직원들은 이렇게 거둔 농산물을 트럭에 싣고 매일 오전 5시 서울로 향한다. 양재, 강남 일대 주요 농협 매장 앞에 ‘7일장’을 개설해 신선한 국산 농산물을 유통마진 없는 싼값에 판다(직거래). 그래도 농민들로서는 남는 장사다. 서원농협은 직접 운영하는 가공공장을 통해 미처 다 팔지 못한 잡곡과 나물을 가공식품으로 만들어 판다(식품 가공). 국산 잡곡 20여 종을 섞어 만든 ‘선식’이 대표 상품. 지난해 17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나물도 마찬가지로 말리거나 삶아 부가가치를 높인다. 서원농협 관계자는 “보통 무를 수확하고 남은 무청은 버리는데 우리는 이 무청까지 가공해 웰빙식품으로 파는데 큰 인기”라고 귀띔했다. 서원농협은 지난해 이런 각종 ‘삶은 나물’로 66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조합장은 “장사가 잘되다 보니 요즘은 우리 물량만으로는 부족해 인근 횡성농협 농민들과도 계약 재배를 하고 있다”며 “직거래와 가공을 통해 유통비용을 낮추고 부가가치를 높인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전했다.
김수공 농업경제 대표는 “서원농협의 농산물 판매 매출은 서원농협 총 매출의 70%에 해당하는데 이는 다른 지역농협들의 농산물 판매 비중이 20%대인 것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라며 “이런 농협이 많아져야 농촌이 살고 도시 소비자들이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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