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강국 코리아]3세대 경수로 ‘APR1400’… 세계가 주목한다

  • 동아일보


한국이 원자력 도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도약한 상징적 계기는 3세대 신형 경수로인 ‘APR1400(사진)’을 독자 개발하면서다. 많은 국가들이 1980년대 중반부터 안전한 제3세대 원전 개발에 박차를 가해왔지만 아직 한국의 APR1400을 능가하는 최신 원자로 기술은 나타나지 않았다.

원전은 시기별로 제1세대(1950∼1960년대), 제2세대(1970∼1980년대), 제3세대(1990년대 이후)로 구분된다. 이 중 안전성과 경제성을 강화한 제3세대 원전으로는 미국의 AP1000(피동형 개량 원자로), 유럽의 EPR(유럽형 가압 경수로), 일본의 ABWR(개량형 비등원자로)와 APWR(개량형 가압원자로)이 있다. 이 3세대 원전의 공통점은 전력생산의 대용량화와 설계수명 연장 및 설계 최적화 등을 통해 경제성을 향상했다는 점. 특히 안전설비를 강화하고 주요 기기를 다중으로 설치해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 안전 중심의 3세대 원전

원전기술 추세에 맞춰 한국도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기술, 두산중공업 등 국내 기술진 주도로 신형 경수로 ‘APR1400(Advanced Power Reactor 1400)’을 개발했다. 1992년부터 ‘국가 선도기술 개발 프로젝트(G-7)’에 따라 10년간 2300억 원을 투입했다.

APR1400은 원전 선진국들이 만든 3세대 원전을 뛰어넘는 강점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원자로 손상확률은 100만 년에 1회 미만이며 내진설계 기준도 기존의 ‘한국표준형원전(OPR1000)에’ 비해 리히터 규모 6.4에서 7.3으로 높였다.

APR1400의 효율도 강점이다. 발전용량이 커졌고, 중요 설비의 사용기간도 늘어났다. OPR1000 원전의 전력생산량은 1000MW지만 APR1400은 1400MW로 40%가량 더 많다. 증기발생기와 같은 핵심설비의 교체주기 또한 40년에서 60년으로 늘린 것도 장점.

○ 원전 기기 일괄 생산, 전 세계 두 곳뿐

APR1400의 또 하나의 강점은 소재에서부터 최종 제품 제작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공정을 한 공장에서 처리하는 ‘일괄 생산 시스템’을 갖췄다는 점. 일괄 생산이 가능한 업체는 전 세계를 통틀어 두산중공업과 프랑스의 원전 설비 업체 아레바 두곳 뿐이다.

원전에 쓰이는 소재 공급에서도 한국은 앞서고 있다. 두산중공업과 일본 ‘JSW’, 프랑스의 ‘CFI’ 등 3개 업체만이 이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부품을 직접 제작, 관리하면 안전성을 늘리고 제작기간을 줄이는 장점이 있다. 김하방 두산중공업 부사장(원자력BG장)은 “지난 30년 간 국내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바탕으로 축적한 기술과 경험이 중요한 자원이었다”며 “세계적으로 원전 소재 기술을 보유한 회사가 거의 없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APR1400은 신고리 3, 4호기와 신울진 1, 2호기에 적용될 계획. 신고리 3호기는 2013년, 신고리 4호기는 2014년 각각 완공된다.

▼ 박정용 두산중공업 원자력BG전무 “설계… 평가… 검증… 수없는 반복의 결과” ▼


“거의 ‘맨땅에 헤딩’하는 상황이었죠. 아무도 해보지 않던 일이니 설계하고, 평가하고 검증한 뒤 고치는 일을 수도 없이 반복했습니다. 함께 고생한 직원들이 고마울 뿐입니다.”

박정용 두산중공업 원자력BG전무는 ‘차세대원자로(APR1400)’를 개발한 지난 6년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1992년부터 2002년 5월까지 10년간에 걸쳐 APR1400은 우리나라가 독자 개발한 3세대 원자로. 프랑스 아레바사의 EPR원전보다 경제성, 안전성, 운전편의성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두산중공업은 설계 제작을 맡아 1997년부터 사업에 참여했고, 박 전무는 당시 설계 책임자로 APR1400의 설계팀을 이끌었다. 박 전무는 “핵반응을 제어하는 ‘제어봉 구동장치’는 총93개가 있는데 1400MW(메가와트)의 출력에 맞는 구동장치는 당시 세계 어느 곳에도 없었다”며 “지진의 강도도 0.2g의 지반가속도(지진으로 실제 건물이 받는 힘·리히터 규모 6.8)에서 0.3g(리히터 규모 7.4)까지 견디도록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일일이 설계를 고치고 검증하는 작업을 반복했다”고 말했다.

일부 장치는 설계가 끝났다 해도 검증할 기술이 없어 외국을 수없이 오가기도 했다. 박 전무는 “터빈을 돌리는 가스에서 수분을 충분히 빼줘야 하는데, 이 역할을 하는 부품을 ‘드라이어’라고 한다”며 “APR1400에 맞는 드라이어를 개발했는데 국내에 검증할 설비가 없어서 이탈리아까지 가서 테스트를 했다”고 말했다. 6년간의 작업 끝에 마침내 APR1400은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3, 4호기는 물론 2009년 수주에 성공한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에 적용될 예정이다.

울진=원호섭 동아사이언스기자 won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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