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어때도 꿈쩍 않던 멸치값이 쏙 빠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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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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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마트, 통영 선단과 직거래 ‘통 큰 멸치’ 판매

심성보 롯데마트 건해산물 담당(오른쪽)과 수협중앙회 관계자가 17일 경남 창원의 대영수산 어장막에서 마트에 납품되는 멸치의 품질을 검사하고 있다. 롯데마트 제공
심성보 롯데마트 건해산물 담당(오른쪽)과 수협중앙회 관계자가 17일 경남 창원의 대영수산 어장막에서 마트에 납품되는 멸치의 품질을 검사하고 있다. 롯데마트 제공
대형마트 A사는 이달 초 국물용 멸치 1kg을 시세보다 1000원가량 싼 1만1800원에 판다고 홍보했다가 롯데마트의 전단지를 보고 서둘러 가격을 9800원으로 2000원 더 내렸다. 멸치 산지가격과 유통마진을 감안하면 kg당 9800원은 원가를 밑도는 수준의 가격이다. 하지만 롯데가 산지 직거래를 통해 확보한 멸치를 1kg에 1만 원에 팔겠다고 나서자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멸치는 수입처가 없어 전적으로 국내 어획 물량에 의존하는 데다 소수의 공급자와 상인이 유통망을 꽉 잡고 있어 매우 폐쇄적인 방식으로 가격 결정이 이루어진다. 연간 8000억 원(판매가 기준) 규모로 추정되는 멸치 시장에서 약 3000억 원어치는 통영의 기선권현망조합(멸치 전문조합) 경매를 통해 거래되는데 이곳의 낙찰 가격이 사실상 전국 멸치 시세의 기준이 된다.

멸치 경매 참여 자격이 있는 중매인은 불과 39명. 이들은 낙찰받은 멸치를 10%가량의 마진을 붙여 대형 냉동창고를 갖춘 도매상에 되판다. 대형마트들은 이들 도매상에게 멸치를 구입하는데 이때 도매상이 챙기는 이윤과 창고 및 물류비, 포장비 등이 붙으며 멸치 가격은 20∼30%가량 더 높아진다. 이 멸치가 소비자에게 판매될 때는 마트용 소형포장으로 옮겨 담는 비용과 물류비, 마트 판매수수료가 추가돼 산지 가격의 2배 가까이로 값이 치솟는다.

게다가 멸치는 장기간 냉동보관이 가능하다. 그 때문에 멸치가 많이 잡혀도 소수의 중간 도매상이 전년도에 비싼 값에 사들여 보관한 비용을 자신의 마진에 반영하면 소비자는 비싼 멸치를 사먹을 수밖에 없다. 2009년 이상기온으로 어획량이 줄며 가격이 20% 이상 뛰었던 멸치 가격이 작년과 재작년 2년 연속으로 조황이 호전됐는데도 떨어지지 않은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롯데가 산지 선단과 직거래를 시도한 것은 바로 이 복잡한 유통단계를 건너뛰기 위해서다. 롯데가 판매하는 멸치는 통영지역의 최대 선단인 대영수산이 잡은 것이다. 대영수산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친 고 김홍조 씨의 이웃에 어장막(멸치 건조장)을 갖고 있다.

롯데는 이 선단과 거래를 시작하면서 마트용 포장 설비를 갖추는 데 드는 3억5000만 원을 부담하는 파격적인 조건도 내걸었다. 대영수산도 자신들의 브랜드를 전국에 알리고, 수산물 유통을 배워 사업을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선뜻 롯데의 손을 잡았다.

지난달 말부터 판매가 시작된 이 직거래 멸치는 많게는 전국 매장에서 하루 2500만 원어치가 팔려 나갈 만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대형마트 B사도 최근 통영에 바이어를 내려보내 선단과 직거래 가능성을 타진하는 등 이번 직거래 실험이 멸치 유통구조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귀띔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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