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타운 이어 강남 재건축단지에도… ‘매서운 한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19일 0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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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 뉴타운에 이어 이번에는 강남 재건축단지에도 '서울시발(發)' 부동산 한파가 거세게 번지고 있다.

주택 재건축 사업에서 기존 소형 가구 수의 절반은 다시 소형주택으로 짓도록 의무화한다는 서울시 방침이 드러난 이후 직격탄을 맞은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주민들의 반발이 심상치 않다.

해당 아파트 단지들에서는 시세보다 가격을 낮춘 급매물이 늘어나는 반면 매수 문의는 뚝 끊겨 더욱 싸늘해진 분위기다.

●개포지구 주민들, 29일 항의집회=강남구 개포동 일대에서 재건축 사업을 진행 중인 8개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서울시 방침에 반발해 오는 29일 서울광장에서 항의집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개포지구 재건축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장덕환 개포주공 4단지 재건축 추진위원장은 19일 "14일 강남구청장과 면담을 했는데 '주민 의견을 반영해 서울시에 의견을 제시하겠다'는 원론적 이야기밖에 못했다"며 "따라서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29일 오후 2시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열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는 8개 단지 1만2000여가구 중 수천명이 참가해 서울시의 재건축 소형 의무비율 강화 방안을 규탄할 예정이다.

개포동 일대 재건축 단지들이 일제히 행동에 나선 것은 이 지역에 유독 전용면적 60㎡ 이하의 소형 아파트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새 정책을 적용하면 전체 가구의 절반 가량은 60㎡ 이하로만 지어야 하는 만큼 소유자들이 재건축 이후에도 소형 아파트를 배정받을 가능성이 크다.

공동 행동에 나서기로 한 8개 단지 중 개포주공 1·3·4단지와 개포시영은 100%가 60㎡ 이하로 구성돼 있어 타격이 가장 심하다. 개포주공 2단지는 상대적으로 큰 평형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래도 60% 이상이 소형 아파트다.

실제로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소위원회는 지난 10일 개포 2·3·4단지와 개포시영에 대한 심의에서 '소형주택 50%를 확보하라'는 결론을 내려 소형 의무비율 강화 방침을 처음 적용한 바 있다.

재건축만 바라보고 낡고 좁은 아파트에서 살아 온 상당수 주민들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주민 윤대영(69) 씨는 "노원구에서 35평짜리 집에 살다가 4년 전 개포동 11평으로 이사왔다"며 "전 재산을 동원하고 8천만원까지 빚을 내 이사했는데 앞이 안 보인다. 사유재산을 일방적으로 제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포동 J공인의 한 관계자는 "주민들이 분노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며 "개포시영에서는 서울시에 공문을 보내 재건축에 전격 반대하기로 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극도의 불만과 위기의식을 느낀 주민들은 지난 17일부터 언론사에 이 지역 재건축 사업의 실태를 알리고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이메일을 보내고 있다.

한 주민은 이메일을 통해 "15년 전에 개포주공 아파트를 구입했는데 투기꾼 취급받는 게 서러워 말도 못하고 참아왔다"며 "말도 안되는 잣대를 들이내니 기가 막히고, 차라리 재건축 전면 중단이 나아보인다"고 말했다.

소형 아파트가 많아야 현 세입자들이 다시 입주할 수 있고 서민 주거복지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서울시 논리지만 이는 강남의 현실을 무시한 발상이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60㎡ 이하로 재건축해도 강남의 새 아파트라면 전세가격이 적어도 3억~4억원은 갈 텐데 현재 7000만원 수준의 낡은 전세 아파트에 사는 세입자들이 어떻게 재입주할 수 있느냐는 이야기다.

또다른 소유자는 이메일에서 "개포주공 소유주들은 재건축되면 쾌적한 새집에서 가족들과 살겠다는 희망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지 투기꾼들이 아니다"며 "정상적인 경제원리가 아닌 행정 폭거로 재산이 뚝뚝 떨어지고 있으니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가격 떨어지고 매수세 끊겨…' 차갑게 식은 재건축 시장=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로 하향곡선을 그리던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소형 의무비율 강화 방침의 공개 이후 추가로 하락하는 분위기다.

개포동 부동산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이달 초 6억6000만~6억7000만원에 거래되던 개포주공 1단지 공급면적 42㎡ 아파트 가운데 지난주 후반 들어 6억5000만원짜리 급매물이 등장했다.

지난해 1월 최고 7억8000만원에 거래된 적이 있다는 점에서 불과 13개월만에 1억원 이상 급락한 셈이다.

가격이 낮아지기는 했지만 정책 효과로 인한 사업성 악화로 매수세가 더 위축되는 분위기다.

B공인의 한 관계자는 "50%를 소형 아파트로 배정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후 상담전화마저 뚝 끊겼다"며 "재건축 사업 추진이 어려워질수록 가격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6억5000만원까지 내려간 1단지 42㎡의 가격이 최악의 경우 6억원 선까지 하락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있다. 5000가구 규모의 1단지는 개포지구 전체의 재건축 가격을 선도한다는 점에서 다른 단지 주민들의 위기감도 크다.

개포동 J공인 측은 "이번 발표 이후 각 평형마다 1000만원 정도씩 가격이 빠졌다"고 했고, G공인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의 '개포동 때리기'로 투자자들이 대치동 은마나 잠실 쪽으로 빠지고 있다"며 형평성 문제를 지적했다.

개포동 외에 소형주택 비율이 높은 다른 재건축 아파트 소유자들의 근심도 깊어지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강동구 고덕동 고덕시영한라·현대와 고덕주공 2단지, 상일동 고덕주공 3·4단지, 송파구 가락동 가락시영 1·2차 등이 전부 60㎡ 이하로 구성된 재건축 아파트 단지다.

이들 단지는 대부분 사업시행인가를 받았거나 평형 배정이 끝나 이번 사태의 직격탄을 맞지는 않겠지만 전반적인 시장 침체 분위기에서 크게 벗어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그밖에 사업 초기 단계인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 1·2단지, 서초구 방배동 삼호1차, 송파구 신천동 미성아파트와 풍납동 우성아파트도 비교적 소형 아파트 비중이 높아 염려하는 주민들이 있다.

고덕동 S공인의 한 관계자는 "아직 크게 동요하지는 않지만 매수세가 잘 붙지 않고 있다. 집을 팔려는 매도자들의 문의만 오는 상태"라고 전했다.

서울시의 재건축 규제와 글로벌 금융시장 침체 등 안팎의 악재가 겹쳐 사업시행인가 단계인 고덕시영 42㎡조차 최고 4억5000만원에서 올해 1~2월에는 3억7000만~3억7500만원까지 떨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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