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年 72억달러 이란 수출시장 中에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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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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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17일 아인혼 만나 ‘제재법’ 예외 요청“원유수입 줄일테니 수출거래 보장해달라”

이란산 원유 수입 감축을 검토 중인 정부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우리 기업들이 이란 수출을 계속할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해줄 것을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관련 기업들도 지식경제부에 수출봉쇄 가능성을 묻는 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만약 미국이 우리 정부의 요청을 거부하면 연간 72억 달러(약 8조2318억 원)짜리 수출시장을 잃을 수도 있어 향후 양국 협상 과정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18일 정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기획재정부 당국자는 전날 로버트 아인혼 미 국무부 이란·북한제재조정관을 만나 미국 국방수권법 제재조항이 적용되는 다음 달 29일 이후에도 한국의 은행들이 이란 중앙은행과 금융거래를 지속할 수 있는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는지를 타진했다. 비록 질의 형태였지만 국내 기업들이 이란에 계속 수출할 수 있도록 보장해달라는 요구인 것으로 풀이된다.

국방수권법에 따르면 발효된 지 60일 이후부터 수출국과 이란 은행 간 금융거래를 차단해 원유 수입 외에 일반 무역거래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할 수 있다. 원유 수입은 이보다 긴 6개월의 유예기간을 뒀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말 서명해 이달 1일부터 국방수권법이 발효된 것을 감안하면 다음 달 말부터 우리 기업들의 이란 수출이 제재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단, 국방수권법에는 ‘해당 수출국 정부가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은행이라는 사실을 미 정부가 인정하면 이란 중앙은행과 금융거래를 계속할 수 있다’는 예외규정이 있다. 정부 당국자들이 아인혼 조정관에게 요청한 내용도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2010년부터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에 개설된 이란 중앙은행의 원화결제 계좌로만 수출대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따라서 미국 정부가 두 은행을 예외로 인정해주지 않으면 우리 기업들의 수출 길이 막히는 결과를 낳게 된다.
▼ “한류 타고 이란 시장 활짝 열렸는데…” 속타는 수출 코리아 ▼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은 최근 지경부에 이란에 수출을 계속할 수 있는지를 문의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지경부는 “아직 예외조항에 대한 미국 측 방침이 결정되지 않아 확답을 줄 수 없다”고 회신했다.

현재 이란에 수출하는 국내 기업은 총 2239곳이며, 자사의 수출액 중 이란 수출비중이 50% 이상인 기업은 281곳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이란에 사상 최대인 72억 달러어치를 수출했다. 국제사회의 제재조치로 이란 시장에서 강자였던 유럽 기업들이 대거 철수한 데 이어 한류 바람까지 불었던 덕이다. 그러나 이제 수출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는 국면에서 미국 제재조치 때문에 국내 기업들이 호기를 잃을 수도 있는 셈이다.

현대차는 이미 이란핵반대연합(UANI) 등 미국 내 유대인 단체들이 “적국인 이란에 계속 수출하면 미국에서 현대차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강하게 압박해 지난해부터 이란 수출물량을 줄이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2∼3월 대(對)이란 자동차 수출을 잠시 중단한 뒤 반조립 상태로 수출을 재개했으나 11월부터는 하지 않고 있다.

미국 제재조치의 핵심이 원유 수입 차단에 있는 만큼 국내 정유회사들은 특히 긴장하고 있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은 이란의 원유를 하루 13만 배럴 수입하는 등 이 회사 연간 수입량의 10%를 이란이 차지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도 하루 이란 원유 수입량이 7만 배럴에 이른다. 이에 따라 정유회사들은 정부의 수입 감축비율과 대체 수입처 확보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란 현지에 지점을 두고 TV와 휴대전화 등을 팔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비상이 걸렸다. 두 회사는 현지 휴대전화 시장의 30%를 점유하는 등 좋은 실적을 거두고 있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홍석우 지경부 장관은 이날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조찬간담회에서 “이란 사태 영향으로 이란에 수출하는 국내 기업들이 어려움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며 “이란 수출이 완전히 금지되거나 극단적으로 가지 않도록 미국과 긴밀히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홍 장관은 “이란이 우리의 5대 원유 수입국인 상황에서 이란산을 다른 나라 것으로 대체하는 문제 역시 미 정부와 현명하게 협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미국의 원유 수입 감축에 적극 협조하는 동시에 우리·기업은행의 금융거래에 대한 예외조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협상 과정에서 이해를 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역업계에선 이란 수출 길이 막히면 결국 제재를 받지 않는 중국 기업들이 어부지리로 시장을 싹쓸이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미국 제재조치에 공식적으로 따르지 않고 있는 중국은 지금도 위안화 결제계좌 없이 이란 기업들과 자유롭게 수출입 거래를 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란 제재 이후 유럽 기업들을 대신해 우리 기업들이 큰 기회를 맞았다”며 “정부가 슬기롭게 대처해서 중국에 이란 시장을 빼앗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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