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투명해졌지만 ‘돈줄’로는 약했다… 올해 한국증시 개방 20년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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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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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상장회사는 최근 2대 주주인 외국기업과 회계장부 공개를 둘러싸고 법적 다툼을 시작했다. 2대 주주가 “파생상품 계약으로 손실을 봤다”며 회계장부 공개를 요구했는데 A사가 “기업 기밀”이라며 거절했기 때문이다.

외국자본과 한국기업 간의 경영권 공방이나 법적 다툼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1992년 한국 자본시장이 처음 개방된 뒤 글로벌 시장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변화 중 하나다.

○ 1992년 1월 3일 첫 허용


정부는 1992년 1월 3일 기업별 지분 10%를 한도로 외국인 주식투자를 처음 허용했다. 이후 몇 차례 한도를 확대하다가 외환위기 후인 1998년 5월에는 아예 한도를 없애 시장의 빗장을 완전히 풀었다. 국내산업이 해외자본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와 기업들이 외국에서 손쉽게 자본을 조달할 수 있어 우리 경제수준을 한 단계 높일 것이란 기대감이 교차했다.

이한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성장 속도가 빨랐던 1990년대 초와 외환위기 이후 외국자본은 큰 도움이 된 게 사실이지만 경영권 위협을 통한 주가 올리기나 고(高)배당을 통해 단기이익을 좇는 외국자본의 시달림도 함께 시작됐다”고 말했다.

○ 기업 지배구조 개선


SK는 2003년 4월 소버린자산운용과 경영권 다툼을 벌인 뒤 2007년 7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오너의 경영권을 안정시키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확립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사회에서 사외이사의 비율을 70%까지 올리고 감사위원회의 역할도 강화했다.

이처럼 외국자본의 경영권 장악 시도에 맞서 비싼 수업료를 치른 회사들 중 상당수는 지배구조 개선에 나섰다.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하고 감사의 독립성을 강화했다. 회계제도를 선진화하고 주주 권리를 강화하는 동시에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지배구조의 변화도 나타났다.

실제로 한국거래소 등 증시 관계기관 출자회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외국인 지분이 높은 회사의 기업 지배구조가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지분이 20% 이상인 상장회사 104곳과 전체 상장사를 비교한 결과 ‘B+’ 이상의 우수한 점수를 받은 기업 수는 외국인 지분이 많은 곳이 일반 기업의 2배였다.

○ 초우량 회사에만 투자


하지만 증권시장의 본래 역할인 기업의 경영자금 조달 측면에서 외국인투자가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외국인투자가들은 주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초우량 회사에만 투자하고 중견·중소기업 투자에는 관심이 낮다는 것이다.

이원선 한국상장사협의회 조사본부장은 “초우량 회사보다는 중견·중소기업이 경영자금 조달에 목마른 회사라는 점에 비춰보면 외국인 투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던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1년 말 현재 외국인들은 한국 증시 투자의 72.9%를 100대 기업에 쏟아붓고 있다. 이 수치는 101∼300대 기업에서는 19.1%, 301대 기업 이하 600여 개 회사에서는 8.0%로 급격히 낮아진다. 외국인의 대기업 편중 현상이 심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적대적 인수합병(M&A) 및 경영권 위협을 통한 차익 회수 위험도 여전하다. 소버린자산운용의 예 외에도 기업사냥꾼으로 유명한 칼 아이칸도 KT&G의 경영권을 위협하다 1년여 만에 1500억 원의 차익을 얻고 나갔다.

KT&G 관계자는 “값비싼 수업료를 내고도 아직 경영권을 위협하는 외국 자본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며 “‘포이즌 필’ 도입 등 경영권 안정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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