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다 같은 털인데 왜 거위털이 더 따뜻한 거야?

  • Array
  • 입력 2011년 11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방한복의 계절’ 오리털이 서운한 이유, 과학으로 풀어보니

“소방서 관계자는 ‘노 씨가 입고 있던 오리털 잠바가 물에 완전히 젖지 않고 부풀어 있었다’며 ‘공기가 많이 든 잠바가 일시적으로 구명조끼 역할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2005년 2월 6일 한 일간지 기사 내용이다. 기사는 하루 전인 5일 오전 3시경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마포대교 북단에서 한강에 투신했다 5분 만에 구조된 노모 씨의 소식을 전하는 내용이었다.

소방서 관계자의 말처럼 오리털 잠바가 구명조끼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정답은 ‘잠깐 동안은 그렇다’이다.

오리털 잠바 안에 들어 있는 오리의 앞가슴 털은 민들레의 면모(綿毛·솜털)와 같은 형태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수많은 작은 털 가지 사이사이에 공기를 품고 있다. 즉, 공기층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 공기층은 따뜻한 체온을 밖으로 빼앗기지 않으면서 외부의 찬 공기는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노 씨의 경우엔 아마도 방수 원단이 물의 침투를 막는 동안에 오리털의 공기층이 몸을 물에 뜨게 했던 듯하다. 게다가 오리털에는 지방도 함유되어 있어 물에 잘 젖지도 않는다고 한다.

겨울의 문턱인 입동(立冬)이 지났다. 광화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도 어느덧 각양각색의 두꺼운 잠바 차림들이다. 또 다른 궁금증이 일었다. 근데 저 잠바들엔 오리털이 들었을까, 거위털이 들었을까.

오리털 vs 거위털


오리털과 거위털은 모두 겨울철 방한 의류 충전재로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오리털과 거위털은 전문가가 아니면 식별하기가 어렵다. 둘 사이의 차이점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 겨우 확인할 수 있는 정도다.

봄 들판에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를 닮은 거위털들(왼쪽). 거위털을 넣은 옷은 필 파워 수치가 높을수록 보온력이 높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촬영 협조=몽벨
봄 들판에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를 닮은 거위털들(왼쪽). 거위털을 넣은 옷은 필 파워 수치가 높을수록 보온력이 높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촬영 협조=몽벨
모양은 비슷하지만 일반적으로 거위털이 오리털보다 더 가볍고 따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거위털은 우선 오리털보다 더 많은 공기를 품을 수 있으며, 그 덕분에 더 많이 부풀어 오를 수 있다. 가지털이 달리는 마디와 마디 사이의 거리가 길어(오리털의 1.5∼2배) 공기가 들어갈 공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거위털이 고급으로 취급받는 또 다른 이유는 거위가 오리의 ‘확대판’이란 점에 있다. 거위의 깃털은 오리의 그것보다 훨씬 더 길고 크다. 보통 거위에서 채취한 솜털(down cluster)은 오리에서 채취한 것의 1∼1.5배 정도다.

참고로 오리털 잠바를 ‘덕 다운(Duck Down)’, 거위털 잠바를 ‘구스 다운(Goose Down)’이라고 하는데 이 ‘다운’은 오리나 거위의 가슴 쪽 솜털을 말하는 것이다.

거위털보다 더 좋은 오리털도

오리털과 거위털은 뽑는 방법도 다르다. 오리털은 오리를 죽인 후 뽑지만, 거위털은 거위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부분적으로 채취하는 것이 보통이다. 거위는 부화 후 12∼14주가 지나면 털갈이 시기가 돼 털을 뽑을 수 있다. 거위털은 처음으로 채취한 지 12∼14주가 지나면 다시 자라난다. 별다른 문제가 없는 한 지역과 기후조건에 따라 연 2∼4회까지도 채취가 가능하다. 한 번에 뽑을 수 있는 털의 양(깃털+솜털)은 210g 정도다.

오리는 한 번에 채취 가능한 털의 양도 적고, 다시 털을 뽑기도 어려워 차라리 도살해 고기와 털을 함께 이용하는 게 유리하다. 몸무게가 약 2kg인 오리에서 뽑을 수 있는 털은 100g 정도. 이 중 가슴 쪽 솜털은 18g 내외라 보통 오리털 잠바(220∼250g의 다운 소모) 하나를 만들려면 12∼14마리의 오리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오리털 중에서도 거위털보다 더 뛰어난 것이 있다. 바로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 해안에 사는 ‘아이더 덕(Eider Duck)’의 털이다. 아이더 덕은 보통 5월 중순에서 6월에 걸쳐 사람의 손길이 쉽게 닿지 않는 해안 절벽에 둥지를 튼다. 이때 암컷은 알을 부화하기 위해 자신의 가슴 부위에서 솜털을 뽑아 둥지를 만든다. 이 솜털을 ‘아이더 다운(Eider Down)’이라고 하는데, 새끼가 둥지를 떠난 후 사람의 손으로 채취한다.

둥지에 있는 아이더 다운의 양은 산란할 때의 기후조건에 따라 다르다. 아이슬란드의 둥지에서는 16∼17g, 북빙권의 둥지에서는 20∼21g까지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기다 연간 2000kg 이상 채취가 금지돼 있다. 따라서 그 희소가치가 매우 높다.

아이더 다운은 솜털 자체는 크지 않으나, 가지털이 곱슬곱슬해 탄력이 우수하며 충전력과 복원력도 뛰어나다. 솜털 간의 응집력도 강해 단열기능과 보온성도 좋다.

좋은 제품 고르는 법

그러나 오리털에 대해 이처럼 자세히 알고 있어도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가볍고 따뜻한 옷을 고르는 것이다.

일단 무엇보다도 제품의 무게가 가벼울수록 좋다. 무거운 다운 의류는 닭털을 섞어 만든 ‘짝퉁’일 가능성이 있다. 닭털은 감촉이 푸석푸석하고 탄력이 없으며 묵직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점포 안의 내부 온도가 낮은 편인데도 불구하고 옷이 부풀어 있으면 좋은 제품이다. 반대로 높은 온도에서 부풀어 있으면 좋지 않다. 오리털이나 거위털은 온도가 내려가면 부풀어 올라 공기를 많이 함유하지만, 온도가 높아지면 털들이 움츠러들어 공기를 방출하는 특징이 있다.

‘필 파워(Fill Power)’도 꼭 한 번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필 파워는 실린더에 솜털 1온스(약 28g)를 넣어 24시간 동안 압축한 후 그 압력을 풀었을 때 밀려 올라온 부피로 측정한다. 즉, 솜털이 눌렸다가 다시 되살아나는 복원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공기를 함유하는 층이 두터워져 보온력이 높다. 일반적으로 800 필 파워 이상을 상품(上品)으로 친다. 요즘에는 1000 필 파워 이상의 제품도 나오고 있다.

정확한 보온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충천재의 비율도 고려해야 한다. 충전재는 솜털과 깃털로 이뤄지며, 솜털의 비율이 높을수록 보온성과 착용감이 뛰어나다. 만약 충전재의 다운 함량이 90%라면 솜털 90%, 깃털 10%를 사용했다는 뜻이다.(참고=‘우모의 세계’, 김한수)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