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 맛’ 때문에 ‘죽을 맛’… 대형마트 마케팅팀 꽃게 판촉 경쟁 치열

  • 동아일보

“대형공사 수주 입찰을 앞두고 치열한 정보전을 벌이는 것 같아요. 요즘 밤 12시 전에 퇴근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상진 롯데마트 마케팅전략팀 팀장은 해마다 8월 중순이면 극도로 예민해진다고 했다. 이 팀장뿐 아니라 대형마트 수산 상품기획자(MD)와 광고 담당 마케팅팀 직원들 모두 그렇다. 바로 꽃게 때문이다.

두 달간의 금어기(禁漁期)를 마치고 출하되는 가을 꽃게는 8∼9월 대형마트의 대표적인 효자 상품이다. 대형마트들은 꽃게를 확보하자마자 곧바로 할인행사를 벌이기 때문에 매년 같은 날 경쟁사와 비교된다. 좋은 꽃게를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 그보다 더 민감한 것은 역시 가격이다. 경쟁사보다 10원이라도 싸게 팔아야 손님들을 끌 수 있다.

그래서 신문에 꽃게 할인행사 광고를 하기 며칠 전부터 비상이 걸린다. 신문광고가 나가기 전날엔 신문사 윤전기가 돌기 직전까지 가격 책정회의를 거듭한다.

지난해 롯데마트는 꽃게 100g당 행사가격을 당초 980원으로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판에 이마트가 890원으로 책정한 광고를 신문사에 보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부랴부랴 880원으로 내렸다. 그리고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올해도 금어기가 풀린 16일 꽃게가 출하되면서 대형마트 직원들은 전쟁을 치렀다. 특히 올해는 어획량이 급감하는 바람에 다른 수산물 값이 폭등하면서 꽃게가 승부처가 됐다.

결과는 무승부였다. 롯데마트와 이마트는 공교롭게도 꽃게 100g의 가격을 950원으로 똑같이 결정해 19일자 신문에 광고했다. 롯데마트 영등포점 관계자는 “행사 시작 1시간 만에 준비한 3kg 75상자가 동났다”고 말했다.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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