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EU의 자유무역협정(FTA)이 7월 1일 0시부터 발효되면서 국내 소비자들의 '유럽연합(EU) 쇼핑길'이 훨씬 넓어진다.
유럽 27개국으로 구성된 EU는 2009년 국내총생산(GDP)이 16조4000억 달러로 세계 전체 GDP의 30%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단일 경제권이다. 우리나라에게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 교역 상대국이다. 개별 회원국의 비준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정식 발효는 2년가량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회원국 전체가 동의해야 하는 문화협력, 지적재산권 형사집행 분야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협정을 맺은 내용이 다음달 1일부터 발표된다.
● 유럽산 먹거리 장보기
한·EU FTA 발효로 당장 소비자 피부에 와 닿을 만큼 가격을 인하하는 품목이 많지는 않다. 대부분 10~15년에 걸쳐 관세가 없어지기 때문에 상당수 제품은 천천히 가격이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유독 가격인하 효과가 두드러질 것으로 보이는 품목은 와인과 홍차다. 각각 15%, 40%에 이르는 관세가 발효 직후에 없어지기 때문이다.
저렴한 유럽산 와인이 늘어나는 동시에 프리미엄 와인도 새롭게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국내 1위 와인 수입업체인 금양인터내셔날은 다음달 1일부터 유럽산 와인 가격을 최대 15% 내린다. 국내에서 인기가 가장 높은 유럽산 와인인 이탈리아산 '간치아 모스까또 다스띠'는 이마트에서 2만5900원에 팔리지만 1일부터는 2만2500원에 판다. 롯데백화점에서는 이탈리아산 '미켈레 끼아를로 바르베라 다스띠 라 꾸르뜨'를 13% 내린 13만 원에 살 수 있다. 프랑스산 '마스까롱 메독'은 10% 저렴해진 4만5000원에 선보인다. 안재호 롯데백화점 와인 선임상품기획자(CMD)는 "한·EU FTA 발효로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한 스페인 프리미엄 와인 매출 비중이 늘 것"이라며 "하반기에 스페인 페렐라다의 '토레 갈라테아' 와인 2종과 벨기에 국왕 결혼식 공식 와인으로 사용된 '페렐라다' 등을 독점 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름 피서철에 인기가 높은 삼겹살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냉동 삼겹살의 경우 현행 관세율이 25%이지만 매년 2.5%씩 10년에 걸쳐 없어진다. 현재 프랑스산 냉동 삼겹살이 ㎏당 7200원인데 이 가운데 1800원이 관세인 만큼 10년 뒤에는 5000원 수준에서 구입할 수 있다. 그동안 미국산과 캐나다산 냉동 삼겹살을 취급해온 이마트는 7월 중에 벨기에산을 들여올 계획이다. 현재 미국산과 캐나다산을 100g당 3000원 가까이에 팔지만 벨기에 산은 판촉차원에서 약 3분의 1수준으로 팔 예정이다.
어린이의 간식거리도 가격 부담이 줄 것으로 기대된다. 프랑스산 벨큐브 치즈는 100g당 6240원 수준인데 이 중 36%인 2246원이 관세다. 발효와 동시에 관세 2%가 인하되면 가격이 소폭 저렴해질 수 있다. 매년 2.4%씩 인하돼 15년 뒤 관세가 아예 없어지면 훨씬 싼값에 즐길 수 있다. 이마트에서는 다음달 1일 FTA 발효를 기념해 1주일 간 프랑스산 '구르메 가염버터'를 1만9500원에서 반값인 9900원에 판매한다. 다른 수입 치즈도 매년 2~3%의 관세 인하에 따라 가격을 내릴 계획이다.
수산물인 고등어와 굴비, 삼치 등에 부과되는 20%의 관세도 10년간 해마다 2%씩 감축된다. 8%인 관세가 5년에 걸쳐 폐지될 올리브유는 L당 1만 원인 제품이 9200원 정도로 내려가 돼 밥상 물가 부담을 덜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 의류와 가구 쇼핑 재미 늘 듯
의류는 8~13%에 이르는 관세가 발효 즉시 없어진다. 하지만 없어지는 관세만큼 가격이 저렴해질지는 의문이다. 워낙 유럽 패션 브랜드들이 저렴한 가격에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자기상표부착방식(SPA) 브랜드 'H&M'은 세계 각국에서 가격을 균일하게 책정하고 있기 때문에 FTA를 기해 가격을 내리지는 않는다. 다만 최근 원화 강세(원-달러 환율 하락)를 고려해 가격을 내릴지 검토하고 있다. 스페인 SPA브랜드 '자라(ZARA)'도 워낙 시장 반응이 좋아 굳이 가격을 낮출 계획이 없다. 이 브랜드는 2009년 한국에 문을 연 뒤 매장을 29개로 늘리고 지난해 연 매출액 약 1500억 원을 올릴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들은 유럽산 의류의 경우 당장 가격이 떨어지기보다 고를 수 있는 옷이 다양해진다는 설명한다. 영국에서는 최근 아동과 여성 의류, 고급 신발 브랜드들이 대거 한국을 찾아 시장조사를 한 뒤 한국진출을 검토 중이다. 유럽산 브랜드의 활약에 따라 국내 의류업체들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의류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명품 브랜드의 옷과 가방 등은 대체적으로 한·EU FTA와 무관하다는 분위기다. 샤넬, 루이비통, 구찌, 에르메스 등 브랜드들이 당장 가격인하를 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명품 브랜드는 대부분 EU 회원국이 아닌 스위스나 홍콩을 경유해 국내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 관세 인하 효과를 못 보는 편"이라며 "게다가 워낙 국내시장에서 가격에 무관하게 인기가 높아 큰 영향이 없다"고 설명했다.
가구도 가격보다는 품목의 다양성에 기대를 걸어야 할 것 같다. 세계 최대 가구업체인 이케아(IKEA)는 연내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다. 이케아는 유럽 현지에서 3인용 소파를 300유로(약 47만원) 수준에 판매하는 등 실속형 가구로 유명하다. 프랑스 프리미엄 가구 브랜드인 '고띠에'는 일찍이 4월에 현대백화점을 통해 한국에 데뷔했다. 현대백화점 가구담당자는 "유럽가구 브랜드들은 보통 쇼파, 침대 등 단일품목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띠에는 종합적으로 진출했다"며 "유럽업체들의 진출이 활발해지며 국내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