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빨대효과’ 가속화… 日-佛선 지역친화 개발로 역세권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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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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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철 개통7년, 겉도는 도시개발 대안은 없나

총공사비 20조6831억 원의 대역사(大役事)인 KTX 경부선 1·2단계 구간이 지난해 11월 완공됐지만 제대로 놓인 것은 아직 철길뿐이다. 2004년 4월 KTX가 개통된 지 7년이 되도록 지방 역세권과 도시는 서울로 빨려들기만 할 뿐 100km대 ‘완행’에 머물러 있다. 역세권을 중심으로 낡은 도심을 재생하고 도시 발전과 연계하는 전략은 구상 수준에 그치고 있다. 동아일보는 국토연구원과 함께 고속철도 선진국의 역세권을 돌아보고 우리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 도시개발 전략과 따로 노는 고속철도

나고야 역세권 개발은 지역경제의 위기감에서 시작됐다. 나고야는 1964년 신칸센이 개통된 뒤 도쿄(東京)와 오사카(大阪)에 도시 기능이 흡수되는 ‘빨대효과’에 시달렸다. 일본 3대 도시의 명성도 퇴색돼 갔다. 나고야 시와 철도회사 JR도카이(東海)는 2005년 아이치(愛知) 박람회를 앞두고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1990년부터 역세권 개발을 계획했다. 역의 기능을 효율화하고 비즈니스, 상업 등 핵심 도시 기능을 역 주변에 집약한다는 콘셉트였다.

개발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와타나베 요시오(渡邊義男) 나고야 시 마을만들기(마치즈쿠리) 과장은 “900%의 특별용적률을 적용하고 사업자에게 소득세, 법인세, 도시계획세 등 금융 및 세제 지원을 제공했다”며 “도시 계획과 병행해 기반시설 비용도 지자체에서 부담했다”고 말했다.

과거 3대 도시로 불렸던 대구 역시 서울과 부산 사이에 끼여 정체를 겪어왔다. 2004년 KTX가 개통되면서 서울과 대구 간 이동시간이 100분으로 단축되자 의료, 교육, 유통, 서비스산업 등에서 경제 유출이 심화됐다.

대구는 동대구역 복합환승센터에 사활을 걸고 있다. 1990년대 초부터 개발을 부르짖었지만 지난해에야 신세계가 사업자로 선정됐다. 민자 5600억 원을 투입해 현 동대구역 남쪽 3만7230m²에 지하 5층, 지상 16층(연면적 26만8881m²) 규모로 업무 상업 문화 컨벤션 시설 등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배후의 국가산업단지, 첨단의료복합단지 등과 연계한 장기 전략은 아직 불투명하다. 변세일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롯데백화점만 흥성하는 대구역처럼 대구 고속철 주변은 거대 유통단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며 “도시계획을 고려해 역세권 전체에 대한 체계적인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고야의 역세권 개발은 2002년 역세권이 ‘도시재생 긴급 정비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주변으로 확대됐다. 2006년 미들랜드스퀘어(47층·247m), 2007년 나고야 루센트타워(40층·180m), 2008년 모드학원 스파이럴타워(36층·170m) 등 고층빌딩이 잇따라 들어섰다. 도요타자동차 등 기업 본사와 연구시설도 나고야로 몰려들었다.

나고야 시 관계자는 “차세대 고속철인 ‘리니어 신칸센’이 2027년 개통되면 도쿄까지 40분으로 줄어든다”며 “역세권을 중심으로 도쿄기업 유치 등 독자적 경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 역을 중심으로 압축개발


대전의 고민도 대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달 초 찾은 대전역 주변은 열차를 기다리며 가락국수를 먹던 추억의 역전(驛前) 그대로였다. 역 광장 왼쪽의 재래시장과 다방은 지방 소도시의 버스터미널을 연상케 했다. 퇴락한 역 앞 상가에는 소규모 점포와 철공소, 창고 등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대전을 상징하던 역 주변 원도심은 1990년대 초 대전시청, 법원, 검찰청 등 주요 행정기관과 금융, 서비스 기능까지 둔산 신도심으로 이전하면서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역세권 재개발과 도시재생은 1990년대 이후 선거철 단골 공약이었지만 구체적인 비전은 없었다. 대규모 주거단지, 유통센터, 철도산업의 메카 등 그때그때 구상이 바뀌며 표류해갔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사업성 담보를 위한 구체적 방안이 없는 상태에서 선뜻 투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프랑스 북동부의 릴 시는 고속철도를 새로운 혈맥으로 삼아 도시 부활에 성공했다. 릴 시는 1970년대 이후 석탄과 철강, 섬유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침체 일로를 걸었다. 하지만 파리∼릴 간 TGV 개통(1993년), 파리∼런던 간 유로스타 개통(1994년)에 맞춰 영국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 등을 연결하는 허브라는 도시 전략이 새롭게 세워졌다.

릴 시는 1994년 민관 합자개발회사인 사엠 외랄릴(Saem Euralille)을 설립했다. 국내용 및 국제용 고속철도 정차역 두 곳 사이의 빈 공간을 입체적 복합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연면적 100만 m²의 릴 역세권에는 업무시설(36만 m²), 호텔(6만 m²), 쇼핑몰(12만 m²), 주거시설(27만 m²)을 비롯해 국제박람회 전시장, 콘서트홀이 들어섰다. 한때 프랑스 최고의 실업률로 고심하던 이곳에 일자리 1만2000개가 새로 창출됐다.

우리나라 지방 역세권도 도시계획과 연계된 특성화 전략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변 연구원은 “KTX 역세권의 특별건축구역 지정, 지구 중복 지정, 비수도권 지역 기반시설에 대한 국비 지원 등 사업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제도가 보완돼야 한다”며 “지역 특성화 계획을 잘 마련한 곳을 시범사업으로 선정해 집중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고야=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릴=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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