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경제]“구제역 습격에…” 순대가게 내장 실종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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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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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가 고향인 피자는 주문자의 입맛대로 토핑을 고르는 재미가 쏠쏠하죠. 한국 음식 중 이런 맞춤 주문이 가능한 음식은 바로 순대가 아닐까요? 야채와 당면 등 각종 재료를 섞어 만든 소를 돼지창자에 채워서 삶아 낸 순대, 퍽퍽하지만 고소한 간, 미끈대지만 부드러운 식감의 허파 등을 비율을 달리해 입맛대로 주문할 수 있죠. “내장은 어떻게 드릴까요?”는 순대가게에서 주문과 동시에 듣게 되는 익숙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몇 주 동안은 이런 질문을 듣기가 어려웠습니다. 구제역 때문에 도살 처분한 돼지가 급증했기 때문이죠. 구제역이 발생해 가축 이동이 금지된 지역에서 도축된 돼지에서 나온 간, 허파, 피, 지방 등 부속물은 그동안 구제역 예방 차원에서 모두 폐기 처분했습니다. 이 때문에 시중에 내장 유통 물량이 급감하면서 순댓집에서 내장이 사라지는 유례없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기자도 설 연휴 직후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한 분식집에서 순대를 주문했다가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2500원을 내면 일회용 그릇에 순대와 내장을 가득 담아주던 곳인데, 이날은 가게 주인이 대뜸 “내장이 없어도 괜찮겠느냐”고 묻더군요. 저녁 장사를 시작도 안 한 초저녁인데 좌판에는 내장 없이 둘둘 말린 순대만 있었습니다.

주인은 “며칠째 내장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했다”며 “내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사는 동네에는 돼지 곱창집이 며칠째 개점휴업이라는 소식도 전했습니다. 돈을 줘도 재료를 못 구하는 상황이 길어지면서 일부 순댓집은 가격을 올리거나 양을 줄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 가게 주인은 “내장이 없어 죄송하다”며 평소보다 순대를 후하게 담아주더군요.

구제역 백신 1차 예방접종이 끝나자 농림수산식품부는 13일 소, 돼지 도축 부산물 유통 재개를 허가했습니다. 이번 조치로 내장 수급에 숨통이 트이면서 실종됐던 돼지 내장도 조만간 제자리를 찾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돼지 피는 계속 유통 제한 품목에 묶여 선지를 재료로 쓰는 정통 순대점과 선지국밥집 등은 당분간 재료난으로 신음할 것 같습니다. 구제역이 하루빨리 퇴치돼서 주머니 가벼운 서민들이 즐겨 찾는 순댓집의 내장 인심도 다시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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