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증시를 휩쓴 신흥국 투자 열풍이 연초 들어 주춤하고 있다. 신흥국의 중장기 성장성이 높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지만, 올 들어 경기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선진국 증시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돋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주요 신흥국 증시가 외국인의 자금 이탈로 일제히 조정 국면을 맞이하자 선진국으로 U턴하는 글로벌 자금 추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신흥시장 매수세 둔화 뚜렷
지난주 글로벌 펀드로 들어온 101억 달러 중 신흥국 증시를 뜻하는 ‘이머징 증시’로 유입된 자금은 17억 달러에 그쳤다. 특히 이머징 주식형 펀드 가운데 인플레이션 민감도가 높은 아시아 투자펀드의 유입 금액은 2주 전의 14%에 불과한 7500만 달러로 급감했다. 하지만 미국 주식형 펀드로는 6주 만에 최대 자금이 몰려 69억 달러에 이르렀다. 포르투갈 스페인의 국채 발행으로 재정위기 우려가 많이 완화된 유럽펀드로도 9억6000만 달러가 들어오면서 순유입으로 전환됐다.
글로벌 자금의 선진국 선호도가 높아진 것은 이머징 증시의 외국인 순매수 추이에서도 드러난다. 올해 들어 외국인 투자자들은 각각 인도 증시에서 9억 달러, 태국 증시에서 8억2300만 달러, 인도네시아 증시에서 5억3900만 달러, 필리핀 증시에서 9200만 달러의 매도 우위를 보이고 있다. 최근 2년간 급속히 유입됐던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이들 주식시장은 약세를 보이고 있다. 1월 들어 선진국 증시가 2.3% 상승한 데 비해 이머징 증시는 0.8% 하락했다. 국내 증시도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매도 폭을 늘렸던 외국인은 25일부터 다시 순매수로 돌아섰지만 매수 강도가 크게 약해졌다. 지난해 9월 이후 4개월간 월평균 3조4000억 원의 순매수를 보였지만 올 1월 들어 8400억 원을 사들이는 데 그치고 있다.
○ 경기회복 기대감 커지는 선진국
이머징 증시에서 자금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은 인플레이션 압력 가중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최근 인도, 인도네시아의 물가상승률은 각각 8.3%, 7.0%에 이른다. 중국의 지난달 물가도 4.5%로 당국의 통제목표치인 3%를 크게 웃돌았다. 물가 상승 압력은 긴축에 대한 우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선진국 증시에 비해 과도하게 오른 밸류에이션 부담도 신흥시장 매력을 감소시켰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지수에 따르면 지난해 선진국 증시는 9.6% 상승했지만 이머징 증시는 두 배 가까운 16.4% 올라 가격부담이 커졌다.
상대적으로 저금리 기조, 양적완화 정책이 유지되는 선진국은 안정적 경기회복 가능성이 커지며 투자매력이 높아졌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 등 선진국 성장률을 종전 2.2%에서 2.5%로 상향 조정했다.
박현명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이 소비와 생산지표에서 개선을 보이며 경기 확장세를 지속 중인 반면 신흥국은 금리 인상, 물가 통제로 그동안 상승 모멘텀 중 하나였던 빠른 성장세가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유로존 위기 등의 악재가 잔존하고 있어 향후 추이는 주시해봐야겠지만 글로벌 경기 사이클을 주도했던 이머징 증시의 매력이 전보다 떨어진 것을 부인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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