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WINE]저급 와인 산지 시칠리아, ‘伊의 캘리포니아’로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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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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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서남부에 위치한 시칠리아는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이다. 면적도 제주도의 13배나 된다. 영화 마니아라면 시칠리아라는 지명을 듣고 영화 ‘대부’ 주인공의 고향 코를레오네, ‘그랑블루’의 배경 타오르미나, ‘시네마 천국’의 토토가 뛰어놀던 팔라초 아드리아노 등의 지명을 자연스레 입에 올릴 것이다. 와인 애호가라면 네로 다볼라, 네렐로 마스칼레세, 인촐리아 같은 이곳만의 개성이 넘치는 포도 품종 이름이 거침없이 나온다. 시칠리아산 와인이 국내에서 낯설던 3, 4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작열하는 지중해의 태양이 떠오르는 시칠리아는 그 어떤 와인 산지와도 구분되는 토양과 기후를 갖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은 ‘유럽의 와인 호수’라 불릴 만큼 저급 와인 산지에 지나지 않았다. 이탈리아 안에서도 경제적으로 낙후된 이곳 주민들이 와인 품질을 중시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다행히 시칠리아의 천혜의 자연환경을 알아본 자본과 기술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시칠리아 와인의 환골탈태가 시작됐다. 한편에선 이 지역 토착 포도 품종에 내재된 장점을 부각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됐고, 다른 한편에선 카베르네 소비뇽, 샤르도네 같은 국제적인 품종들이 시칠리아 토양에 빠른 속도로 안착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을 품고 1년에 300일 이상은 해가 나는 시칠리아의 기후를 생각하면 레드 와인의 기세가 등등할 것 같지만 사실 전체 포도밭 면적의 60% 이상은 화이트 와인용 포도가 차지하고 있다. 카타라토, 인촐리아, 타스카 등으로 대표되는 화이트 와인용 품종은 단일 품종만으로 와인을 빚기에는 저마다 약점이 있어 와인 메이커의 선택에 따라 블렌딩되기 일쑤다. 그리고 이 가운데 상당량은 이탈리아 본토의 각 와인 산지로 팔려 나간다.

최근 시칠리아가 ‘이탈리아의 캘리포니아’라는 별명을 얻게 된 데에는 이 땅의 환경에 빠른 속도로 적응한 샤르도네의 공헌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파인애플향을 중심으로 퍼지는 과일향은 빼어난 후각을 가진 훈련된 시음가가 아닌 일반인의 코에는 캘리포니아나 호주의 샤르도네로 혼동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네로 다볼라는 시칠리아 와인을 언급할 때 가장 먼저 소개되는 품종으로 앞으로도 지금의 위상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네로 다볼라와 비슷한 맛을 내는 품종으로 시라를 꼽는다. 맛은 비슷한지 몰라도 이 품종은 재배가 여간 까다롭지 않아서 이탈리아 본토의 여러 지방에서 가능성을 보고 재배를 시도했지만 성공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품종은 칼라브레세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모니카 벨루치가 열연한 영화 ‘말레나’는 어느 정도 숙성된 네로 다볼라 100%로 만든 와인을 홀짝이며 봐야 할 것 같다.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아름다운 선율은 더없이 좋은 안주다.

김혜주 와인칼럼니스트
● 이번 주의 와인
두카 엔리코


두카 디 살라파루타는 1824년 설립된 시칠리아의 대표적인 와이너리다. ‘시칠리아 네로 다볼라의 교과서’라는 이 와인은 이곳의 간판급 와인이다. 와인 이름이기도 한 엔리코 공작은 프랑스에서 양조기술을 배우고 왔을 뿐 아니라 프랑스 양조 기술자를 초빙하는 등 와인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한때 국내에도 수입됐던 이들 와이너리의 대중적인 와인 ‘코르보’ 시리즈를 더는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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