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 상승 붐 뒤엔, 은퇴 시작한 베이비붐세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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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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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세… 올해 신규입주 37% 줄어 1차 원인은 수급불균형錢세… 집 가진 베이비붐세대 “목돈보다 현금” 월세 전환, 戰세…전세 줄면서 값도 껑충

《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는 이모 씨(54)는 지난해 11월 전세를 놓으려던 서울 잠실의 아파트를 보증부 월세 형식으로 바꿔 얼마 전 계약에 성공했다. 최근 전세금이 크게 오르면서 전세금 인상분만 1억 원 넘게 받을 수 있었지만 월세 100만 원을 선택했다.
이 씨는 “직장을 그만두면 고정 수입이 없어져 목돈보다는 매달 들어오는 현금이 낫다”며 “월세를 받아 생활비에 보탤 생각”이라고 말했다. 》
갈수록 심각해지는 ‘전세 대란’ 현상에 베이비붐 세대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들이 주택 임대차시장에서 월세로 돌아서면서 전세물건 품귀와 전세금 급등이라는 연쇄반응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1955∼1963년 태어나 지난해부터 은퇴하기 시작한 세대로 국내 전체 인구의 14.6%를 차지한다. 이들은 자산의 83%를 부동산으로 보유해 국내 부동산 시장의 ‘큰손’으로 꼽힌다.

○ 베이비부머, 전세난 심화시켜

전세금은 지난해부터 무섭게 오르기 시작해 겨울철 비수기인데도 열기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국민은행의 주택가격동향 조사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전국 전세금은 7.1% 올라 2004년 이후 6년 만에 최고 수준이 됐다. 2009년에 3.4% 오른 것과 비교해도 2배 이상 높은 급등세이다. 지금은 봄 이사철 전에 움직이려는 수요까지 몰리면서 상승세에 불을 지피고 있다. 잠실의 한 공인중개사는 “시세보다 수천만 원씩 올려 전세물건을 내놓는 집주인들도 꽤 있다”며 “너무 배짱부리는 게 아닌가 싶다가도 며칠 지나면 시세가 따라 올라가는 상황”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전세금이 치솟는 원인으론 먼저 신규 입주물량 감소에 따른 수급불균형을 꼽을 수 있다. 당장 올해 입주하는 전국의 아파트는 18만8727채로 지난해 입주물량 30만401채보다 37%나 줄었다. 여기에 주택경기 침체로 집을 사기보다는 전세를 택하는 점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김규정 부동산114 부장은 “집값이 추가로 떨어질까 봐 걱정해 매매보다는 다시 전세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주택시장의 큰손인 베이비부머가 월세로 돌아서는 점도 전세물량 부족 현상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베이비부머의 막내에 해당하는 직장인 김모 씨(47)는 지난해 11월 경기 고양시 일산의 아파트를 월세로 내놓은 지 2개월이 지나서야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130만 원을 내겠다는 세입자를 구했다. 김 씨는 “중개업소에서 전세로 내놓으면 바로 계약된다고 했지만 월세를 고집했다”며 “목돈이 있어 봤자 쓸 곳도 없고 금리도 낮아 월세가 훨씬 이득”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최근 미래에셋부동산연구소에서 발행한 ‘가구의 부동산 자산 활용’ 보고서에 따르면 본인이 거주하지 않는 부동산의 운용 형태가 은퇴시점인 50대 이후부터 크게 달라졌다. 30, 40대는 각각 80%, 69%가 전세로 내줬지만 이 비율이 50대는 50%, 60대와 70대 이상은 각각 48%, 36%로 크게 줄어들었다. 반면 보증부 월세로 부동산을 활용하는 비율은 30, 40대가 30% 미만이었지만 50대부터는 절반 가깝게 늘었다. 김규정 부장은 “(주택으로) 시세차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지자 월세를 선호하는 경향이 생겨 전세물량이 더 줄어들었다”고 분석했다.

○ 주택 놓고 세대갈등 생길 수도

베이비부머들이 월세를 선택하면서 이들이 은퇴할 때 보유 부동산을 처분해 국내 부동산시장이 붕괴될 것이라는 일부의 예상은 빗나갈 것으로 보인다. 베이비부머들이 임대를 통해 보유 부동산을 현금 창출 수단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이현석 건국대 교수(부동산학)는 “베이비부머들은 제대로 된 금융교육을 받은 첫 은퇴세대라고 할 수 있다”며 “주택에 대해서도 이제 매각차익뿐만 아니라 운용수익, 즉 임대에 눈뜨기 시작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렇다 보니 전체 임대시장에서 월세 비중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수도권보다 먼저 전세난을 겪은 광역시는 2008년 말 전체 55.9%에 이르던 전세 비율이 지난해 말 49.1%로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반면 보증부 월세 비중은 같은 기간 41.4%에서 46.9%로 늘어났다. 이석준 공인중개사는 “최근 전세를 월세로 바꿀 때 활용하는 월세이율이 얼마냐고 묻는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며 “남아 있는 매물 중 보증부 월세가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베이비부머의 월세 전환은 세입자인 젊은 세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서울 잠실에 사는 이모 씨(39)는 지난해 10월 이사를 하면서 보증부 월세로 계약했다. 살던 아파트의 전세금이 2배 가까이 올라 같은 단지에서 조금이라도 싼 저층으로 옮겼다. 이 씨는 “양가 부모님에게서 받은 돈으로 보증금을 보태고 월세는 50만 원으로 했다”며 “이제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 지출이 많아지는데 월세까지 내려니 걱정”이라고 털어놓았다.

일부 전문가는 베이비부머의 월세 전환은 젊은 세대가 늙은 세대를 부양하는 구조를 국내 부동산시장에 뿌리내리게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마치 윗세대의 생계를 돕는 연금의 재원을 아랫세대가 충당하는 방식과 유사한 셈이다. 또 베이비부머는 이미 자산을 축적해 놓았지만 젊은 세대는 월세 부담까지 겹쳐 자산 축적이 더 어렵고 그 기간도 길어지는 후폭풍을 맞게 된다. 최근 전세금 인상분 9000만 원을 마련하지 못해 월세를 선택한 직장인 성모 씨(36)는 “맞벌이를 한다고 해도 매달 50만 원씩 월세로 내는 것은 큰 부담”이라며 “외식비 같은 지출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깨는 뾰족한 대책은 없다. 자칫 베이비부머와 젊은 세대 사이에 집을 놓고 팽팽한 긴장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다. 현택수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월세제도가 확산되면 세대 간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며 “임대주택 공급 같은 사회복지제도를 정비해 이를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박영준 인턴기자 서강대 경제학과 4년

박소영 인턴기자 연세대 중문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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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7일 동아뉴스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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