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 쟁점 논의가 장외로 확산되고 있다. 양국 의회와 이익단체들이 사실상 재협상 국면으로 접어든 한미 FTA 논의에서 협상테이블에 올릴 분야에 대한 주문을 쏟아내면서 논의가 점차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18일 미국의 통상전문지인 ‘인사이드 유에스 트레이드’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한미 FTA에 반대하는 의원 9명을 백악관으로 불러 한미 FTA의 장점을 설명하며 반대 입장을 철회하거나 최소한 반대 운동의 강도를 낮춰줄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참석했던 마이크 미쇼드 의원(민주당·메인)은 “자동차, 쇠고기 외에도 노동과 투자, 금융 조항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펴며 “오바마 대통령도 이 조항을 변경해 의회 비준을 성사시킬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미쇼드 의원은 지난달 한국의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등 4개 야당 소속 국회의원 35명, 미국 민주당 소속 연방하원 의원 20명과 함께 한미 FTA 전면 재협상 촉구 서한을 한미 정상에게 보냈으며 미국 내에서 한미 FTA 강경 반대론자로 유명하다. 따라서 미쇼드 의원의 발언은 오바마 대통령의 뜻이라기보다 미쇼드 의원 자신의 의지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많다.
그럼에도 이 발언은 우리 협상팀에 일정 부분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 의회의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강경 반대론자들의 재협상 요구사항은 노동 분야에서 한국의 타임오프제, 복수노조제 허용 철회와 투자 분야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제(ISD)의 철회, 금융 분야에서 금융시장의 단기 세이프가드(보호조치) 마련 등이다.
한국에서도 협정문 수정이 불가피하다면 기존 협정문에서 실현하지 못한 이익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진작부터 전면 재협상을 요구했던 민주당을 비롯해 자유선진당도 자동차 분야에서 미국의 요구를 상당수 수용한다면 농업 분야에서 양보를 얻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이런 목소리가 나온다. 한나라당 홍정욱 의원은 19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이제 한미 FTA를 깰 수도 있다는 각오로 반대급부를 제시해야 한다”며 “우리의 취약 분야인 농산물과 섬유, 의약품 등 반대급부를 요청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농산물에선 세이프가드 기간을 늘리고 발동 요건을 완화하라는 요구와 함께 냉동육과 가공육(소시지, 밀폐용기 제품)을 포함한 냉장육(목살, 삼겹살 제외)에 대해 2014년 1월로 규정된 관세철폐 시기를 뒤로 미루라는 요구가 나온다.
섬유에선 원사의 원산지 표시에 대한 예외 규정을 확대하라는 주문이 있다. 한미 FTA 협정문 원안에서 의류와 직물에 들어가는 원사 2억 m² 물량 중 수입원사를 국산으로 인정하는 물량을 늘리라는 뜻이다.
제약에선 특허 만료 전 복제약 시판을 방지하도록 한 조치를 협정 발효 후 18개월 이상 유예하라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제약 관련 단체들은 최근 이러한 요구 사항을 직접 국회에 전달하기도 했다. 또 미국이 한국산 승용차와 픽업트럭에 대해 관세철폐 기한을 연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자동차 분야에서도 한국산 타이어 관세철폐 기한 단축, 한국 시장의 친환경차에 대한 관세철폐 기한 연장 등을 추가로 확보하라는 요구도 나온다.
이러한 양국의 요구들은 실제 협상 대상이 되기보다는 양측의 협상용 카드로 활용될 공산이 더 크다는 분석도 많다. 그렇지만 이른 시일에 협상을 마무리 짓기로 합의한 양국 정부는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이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은 미쇼드 의원 등과 만난 자리에서 “결코 (협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최석영 외교통상부 FTA교섭대표도 19일 “미 의회의 입장을 미국 행정부의 입장이라고 보면 곤란하다”며 “현재 한미 FTA 논의는 불과 몇 개 안 되는 조항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한미 FTA 협상이 점차 제로섬 게임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어 양국 모두 ‘이익의 균형’이라는 절묘한 접점을 찾기는 더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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