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특집]현장에서/ ‘소비자는 갑-건설사는 을’ 계속 이어질까

동아일보 입력 2010-09-30 03:00수정 2010-09-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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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고객들을 만족시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모델하우스를 방문한 사람들이나 문의 전화를 건 사람들은 가격이 얼마나 할인을 한 것인지, 풀옵션은 갖추고 있는지 등을 먼저 물어봅니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 분양대행사 사장은 소비자들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다른 곳은 다 해주는데 왜 안 해주냐고 따지면서 혜택이 없다고 대답해주면 싸늘하게 전화를 끊거나 돌아가 버린다”며 “다른 곳은 다 해주는데 왜 안 해주냐고 따지기 때문에 수지타산을 맞추면서 이들을 만족시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분양시장에서 소비자를 대하는 건설사의 태도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소위 ‘갑’의 위치였지만 이제는 ‘을’로 바뀐 것이다.

한창 경기가 좋던 2000년대 초중반에는 건설사들이 아파트를 짓기만 하면 소비자들이 너도나도 찾아와 ‘아파트를 당첨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민원이 빗발쳤다고 한다. 아파트를 짓기만 하면 팔렸고 청약경쟁률이 높아 당첨되기 어려웠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 같은 민원은 없어지고 오히려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힘을 써 달라’는 민원만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청약할 때에 비해 아파트 가격이 많이 떨어져 계산상 손해를 보게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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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로 쌓인 미분양 해소를 위해 건설사들이 각종 할인 혜택을 제공하면서 소비자들도 이제는 ‘혜택’을 ‘기본사양’으로 당연시하게 됐다. 마찬가지로 가격 하락, 부동산 거품이 빠져야 한다는 기대심리도 흔해져 소비자들은 부동산 가격이 좀 더 떨어지기만을 기대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부동산 거래는 뜸하고 시장은 여전히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다.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요즘에는 방문객들이 가격이 얼마나 떨어졌는지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에 실제 거래로 이어지는 건수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건설사들도 주택 공급을 꺼리고 있다. A건설 주택사업본부 임원은 “최근 건설사들의 분위기는 손해를 보느니 차라리 안 짓는 게 낫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며 “당초 올해 분양하기로 된 용지가 있었지만 경영진 회의에서 ‘쉬는 게 남는 거다. 괜히 사고 치지 말고 분양에 자신 없으면 아예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어 계획을 연기했다”고 귀띔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건설사들이 주택공급을 꺼리게 되면 수요와 공급 간 불균형을 불러와 앞으로 부동산 가격 급등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에서는 공공주택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고 있지만 민간주택 공급 없이 공공 물량만으로 주택 수요를 충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내년에 예정된 주택 공급 수가 크게 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투기지역을 제외하고 총부채상환비율(DTI)을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내용의 8·29 부동산 대책을 내놓은 지 한 달이 넘었지만 부동산 시장은 쉽게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치 앞도 모르는 불확실한 부동산 시장 앞에서 경기를 살리기 위한 정부의 묘안도 궁금하지만 집을 구입하려는 실수요자들이라면 한 번쯤 구입 타이밍에 대해 고민해봐야 된다. 지금은 ‘갑’의 위치에 있는 소비자지만 언제 또다시 ‘을’의 위치로 가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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