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칼럼] 아무리 진실을 말한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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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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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미국 예방서비스 태스크포스(USPSTF)는 유방 X선 검사를 이전처럼 40세부터 매년 받는 게 아니라 50세부터 2년마다 받는 게 좋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USPSTF가 다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잦은 유방 X선 검사가 유방암 생존율을 높이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또 암으로 잘못 판단하는 오진 때문에 불필요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보는 사례가 많았다.

이 발표는 일부 의료관련단체와 여성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은 “유방암 치료를 크게 후퇴시켜 수많은 여성들이 유방암으로 사망할 것”이라고 들고 일어났다. “정부가 의료비를 줄이기 위해 손에 피를 묻히고 있다”는 원색적 비난까지 등장했다.

사실 USPSTF는 민간 전문가들이 과학적 증거에 기초한 최선의 의료 방법을 연구하는 독립적인 위원회다. 의료비용 측면은 연구 시 고려 대상이 아니다. 미국 국립질병예방건강기구의 크레이머 박사 등 전문가에 따르면 유방암은 진행속도에 따라 대략 거북이, 곰, 새에 비유되는 세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거북이’에 해당하는 암은 진행속도가 너무 느려 굳이 치료할 필요가 없다. ‘새’에 해당하는 암은 진행속도가 너무 빨라 현재의 기술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 진행 속도가 중간 정도인 ‘곰’에 해당하는 유방암만이 조기 검진으로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허위 양성 진단, 방사선 피폭 등 유방 X선 검사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은 게 문제다. 지난해 7월 영국의학저널은 유방 X선 검사로 한 명의 여성이 목숨을 건지는 동안 10명의 여성이 불필요한 유방암 치료를 받는다고 밝혔다.

USPSTF가 아무리 이런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해도 반대론자들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들은 ‘조기 검진이 생명을 살린다’는 뿌리 깊은 믿음을 무기로 여론을 흔들었다. 여기에 유방 X선 검사로 유방암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한 여성들의 경험담까지 더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싶은 대중의 감성에 호소했다. 경제적 이익이 직결돼 있는 일부 이익집단도 가세했다. 유방 X선 검사와 관련한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문제는 USPSTF가 데이터와 논리만을 앞세워 대중을 계도하려 한 태도였다. 인간의 생명, 건강, 환경 등과 관련한 논란에서 종종 감성이 이성을 압도한다. 특히 잘못된 신념의 뿌리가 깊고 오래됐다면 더욱 그렇다. 논리적 근거 못지않게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사실과 논리가 아니라 비전과 가치를 중심으로 풀어 나갈 때 좀 더 효과적이다. 사실 자체만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바꾸기 어렵다. “유방 X선 검사에 대한 당신의 믿음은 이러저러한 면에서 틀렸다”라고 지적하는 것보다는 “여성의 생명도 지키면서 불필요한 수술과 방사선 노출도 줄이는 방법을 고안했다”라고 스토리를 만들어 설득했어야 했다.

민감한 이슈일수록 태도가 중요하다. 커뮤니케이션은 테크닉이라기보다는 태도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태도 때문에 상대방의 말이 듣기 싫어질 때가 많다.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사인 인컴브로더의 박일준 대표는 “커뮤니케이션은 메시지를 팔기보다 메신저 자신을 파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수많은 경로를 통해 진위를 알 수 없는 정보가 난무하는 시대다. ‘진실은 승리한다’는 명제는 더는 항상 참이 아니다. 아무리 경쟁사보다 좋은 상품을 만들어내고 경쟁 정치단체보다 좋은 정책을 제시해도 단순한 알리기, 일회성 이벤트로는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진실도 묻혀버릴 수밖에 없는 시대다.

한인재 미래전략연구소 경영교육센터장 epicij@donga.com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63호 (2010년 8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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