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기자의 쫄깃한 IT]신상캐기-아니면 말고식 폭로… ‘고발넷’ 되어버린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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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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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아니라 ‘고발넷(고발+인터넷)’이군….”

말 그대로, 지난주 인터넷은 고발의 연속이었습니다. 시작은 ‘경희대 여대생’ 사건부터였습니다. 경희대에 다니는 한 여대생이 화장실에 놓여 있는 우유팩을 청소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머니뻘 되는 환경 미화원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었던 사건. 자신을 환경 미화원의 딸이라고 소개한 누리꾼은 이 사실을 한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 올렸고, 이 글은 조회수 70만 건을 넘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처음엔 누리꾼들도 반신반의했지만 곧이어 현장 녹취 파일이 공개되자 “공개 사과하라”며 여대생을 비난했습니다. 이때부터 이 여대생은 ‘경희대 욕설녀’ 심지어 ‘경희대 패륜녀’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인천 목졸녀’ 얘기가 게시판에 올라옵니다. 환경 미화원인 자신의 어머니가 새벽에 화장실 청소를 하던 중 세면대에 있던 한 20대 여성에게 잠시 좀 비켜달라고 하자 이 여성이 자신의 어머니를 목 조르며 구타를 했다는 것이죠. 목을 졸랐다는 말에 누리꾼들은 “더 심하다”며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이번에는 ‘지하철 임신부 발길질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지하철역에서 어떤 여성이 임신 8개월 된 한 여성과 말다툼을 벌이다 임신부의 배를 발로 찼다는 목격담과 사진이 인터넷에 게시됐습니다. ‘살인 미수’라는 누리꾼들의 비난에 경찰은 발길질녀를 불구속 입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녀’의 원조로 꼽히는 5년 전 ‘개똥녀’ 사건이 오버랩 됩니다. 그간 우리를 스쳐갔던 수많은 ‘∼녀’들은 각기 다른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개똥녀’처럼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는 여자’가 있는가 하면 TV 뉴스에 인터뷰 장면이 나왔던 ‘인천 간석동녀’나 독일 월드컵 때 화제가 된 ‘엘프녀’ 등은 외모 덕분에 칭송 받은 경우입니다. 지극히 마초적이고 남성지향적인 명명법이었죠. 반면 서울역 앞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노숙인에게 자신의 목도리를 매주었던 ‘목도리녀’는 우리를 훈훈하게 만들기도 했죠.

확실한 것은 갈수록 점점 자극적인 ‘∼녀’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죠. 개똥녀 때만 해도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은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욕설, 패륜, 심지어 살인 미수 등 주제 자체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현장을 생생히 전해주는 음성이나 동영상 파일은 자극을 두 배로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죠.

물론 비난받는 ‘∼녀’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녀’를 소비하는 온라인 문화 속에 진지한 성찰이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개념 없다’며 손가락질은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온라인상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더욱이 비난을 가장한 신상 파헤치기, 확인되지 않은 목격담 등은 또 다른 피해자를 낳기도 합니다.

비난을 위한 비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지금의 ‘∼녀’ 현상. 5년 전 개똥녀, 지금의 경희대 여대생 사건. 5년의 시간 동안 달라진 ‘그림’은 과연 뭘까요?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동영상=‘광화문 괴물녀’

▲동영상=‘아이폰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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