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2015년엔 2억2400만명
역동적 소비계층으로 떠올라
뉴델리 인근 100여개 쇼핑몰 북적
자동차 시장 年12~13% 고속성장
LG전자 서비스 직원들 LG전자 인도 뉴델리 서비스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현지 애프터서비스 직원들. 인도 가전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LG전자는 현지 인도인 직원을 신뢰하고 이들에게 권한을 이양한 점을 성공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사진 제공 LG전자
화려한 블라우스에 검은 레깅스 차림의 인도 여성 아파라오 보라 씨(30)가 세련된 디자인의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패스트 패션 브랜드인 ‘망고’ 매장에서 걸어 나왔다. 뉴델리에 사는 보라 씨는 “여러 브랜드의 옷을 한곳에서 볼 수 있어 대형 쇼핑몰을 좋아한다”며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들르는 편”이라고 말했다.
인도 뉴델리 남부 사케트 지역의 대형 쇼핑몰인 실렉트시티워크는 영화관, 옷가게, 음식점을 한곳에 모아놓은 복합문화공간이다. 실렉트시티워크 곁에는 DLF몰, MGF메트로폴리탄몰 등이 잇달아 들어섰다. 2007∼2008년 문을 연 이 3곳의 규모는 총 20만 m²에 달한다.
급증하는 쇼핑몰에선 인도의 강한 소비력이 느껴졌다. 이곳에 동행한 김상연 롯데백화점 인도사무소장은 “진열된 상품과 소비자의 수준은 서울 롯데백화점 잠실점 정도라고 보면 된다”며 “수준은 조금씩 다르지만 뉴델리 시내와 인근 도시에만 이런 쇼핑몰이 100개 가까이 된다”고 귀띔했다.
○ 글로벌 기업을 좌우하는 인도의 소비 파워
인도 시장의 힘은 엄청난 구매력에서 나온다. 월 신규 가입자가 600만 명에 이르는 휴대전화시장은 프리미엄 전략을 앞세운 삼성전자의 고집을 꺾었다. 삼성전자는 2008년 기존 프리미엄 중심 전략을 수정하고 인도시장에 가격이 20달러대인 휴대전화 ‘구루’를 내놓았다. 지난해에는 전력 사정이 안 좋은 시장 환경에 맞춰 세계 첫 태양열 충전 전화를 인도시장에서 공개했다.
매년 12∼13%씩 성장하는 인도 자동차 시장의 중요성도 나날이 커지고 있다. 7일 뉴델리 중심가의 대형 전시장인 ‘프라가티 마이단’에는 아침부터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점심때가 되자 전시장 입구는 관람객 인파로 매우 혼잡했다. 이곳에선 인도 최대의 자동차 전시회인 ‘델리 모터쇼(Auto Expo 2010)’가 열렸다.
델리 모터쇼의 풍경은 비슷한 시기 지구 반대편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3대 모터쇼 중 하나인 ‘디트로이트 모터쇼’와는 사뭇 달랐다. 자동차의 미래를 보여주는 화려한 콘셉트카도, 첨단기술을 뽐내는 슈퍼카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전기 자동차도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 대신 작고 싼 소형차가 무대를 점령했다. 전시장에서 카메라 셔터를 연방 눌러대던 카필 사파리아 씨는 “인도에선 해치백(객실과 트렁크의 공간이 함께 붙어 있는 차) 소형차가 아니면 인기를 끌지 못한다”고 말했다.
세계 1위 자동차업체인 일본 도요타는 이런 취향에 맞춰 소형 콘셉트카 ‘에티오스(ETIOS)’를 개발해 이번 전시회에서 선보였다. 폴크스바겐의 폴로, 시보레의 비트, 포드의 피고 등 다른 업체들이 내세운 모델도 모두 소형차다. 현대차도 인도 최고의 인기배우 샤루크 칸을 앞세워 소형차 ‘i10’을 알리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i10은 가격이 1300만 원대에 L당 17.8km를 달릴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이 모터쇼는 2008년 타타자동차가 200만 원대의 세계 최저가 자동차 ‘나노’를 선보이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격년제로 열리는 이 전시회는 이미 세계 자동차 업계의 중요한 행사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현지 언론은 델리 모터쇼가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의 새 모델이 가장 많이 소개되는 이벤트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이렇게 글로벌 기업을 쥐고 흔드는 인도의 중산층은 현재 전체 인구의 6%인 6000만 명 수준이지만 2015년에는 20%(약 2억2400만 명), 2025년에는 40%(약 4억4800만 명)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 테이블 위로 올라오는 소비자들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 주 농촌 마을에 사는 한 인도인 주부는 아침에 침대시트를 짜고 오후에는 일당 100루피를 받고 마을의 도로 평탄화 작업에 나간다. 이렇게 올리는 소득은 농부인 남편보다 많다. 만모한 싱 정부가 농촌 거주자들에게 한 해 100일 동안 고용을 보장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농촌가구의 소득이 향상되고 있다.
KOTRA는 농촌의 하층 가구들이 소비력을 갖추며 전자제품, 자동차 구매에 나설 것으로 분석했다. 각 소비재의 품목별 농촌 보급률은 승용차가 24%, TV가 62%, 에어컨은 2%, 전자레인지는 4%에 그친다. 시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의미다.
인도 경제전문가인 라마 비자푸르카르 씨의 연구에 따르면 인도 농촌의 중상층 이상 비중은 2005년 10.2%에서 지난해 14.6%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중 하층 가구 비율은 32.5%에서 20.6%로 낮아졌다. 도시를 포함한 인도 전체 인구 기준으로도 연간 12만 루피(약 297만 원) 미만으로 생활하는 빈곤층 비율이 2001∼2002년 72%에서 2009∼2010년 51%로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 40억 저소득층도 새 소비그룹 떠올라 ▼
탄탄한 농촌 경제기반은 인도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원인 중 하나다. 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지목되는 중국경제와 다른 점이다. 인도의 중산층이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는 근거이기도 하다. 인도 최대의 전자업체인 비디오콘의 한국인 최고경영자(CEO) 김광로 부회장은 “인도시장은 11억 명이 넘는 엄청난 인구가 끊임없이 테이블 위(소비력을 갖춘 중산층)로 올라온다”며 “기업들은 이들 계층과 함께 성장하는 마케팅 전략을 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프라할라드 미국 미시간대 교수는 연소득 3000달러 미만의 저소득층을 일컫는 ‘BOP(Bottom of Pyramid) 그룹’이 새로운 소비자 그룹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40억 명에 달하는 BOP그룹 가운데 상당수가 인도인이다.
○ 소비자와 함께 성장하라
필립스, 유니레버 등은 이런 전략을 실천했다. 필립스는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20만 이상의 농촌 가구에 1000루피(약 2만4000원)짜리 태양전지 조명기기를 공급하는 ‘지속 가능한 조명기기 확산 모델(SMILE·Sustainable Model in Lighting Everywhere)’ 사업을 벌였다. 이를 통해 대부분의 해외 기업이 확보하지 못한 인도 전역 판매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유니레버는 위생관념이 부족한 인도 농촌에 2000년부터 손 씻기 캠페인을 전개했다. 이 활동으로 비누 사용량은 2배 증가하고 설사병과 피부병은 절반으로 줄었다. 유니레버의 매출액도 50% 늘었다.
현대자동차도 인도의 어린이들에게 교통안전 수칙을 가르치는 사회공헌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캠페인엔 저소득층 대학생들을 참여시켰다. 현대자동차 현지법인 박찬영 차장은 “인도의 심각한 교통사고 문제가 해결되면 자동차 판매량이 증가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4년째 인도사업을 이끌고 있는 신문범 LG전자 부사장은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덩치가 큰 민주주의 국가인 동시에 평균연령이 가장 낮은 젊은 국가여서 잠재력이 크다”며 “꾸준하고 튼튼하게 성장하는 인도를 경제영토로 확보하는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은 한국 기업의 미래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델리=김용석 기자 nex@donga.com
■ 한국기업 이것만은 꼭
소매유통-인프라-민영화 ‘기회의 땅’ 현지 사정-생활문화 꿰뚫어야 성공
국내 기계업체 10여 곳은 한국과 인도의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이 체결된 작년 8월경 현지조사단을 꾸려 인도 뉴델리를 두 차례 방문했다. 기계산업이 CEPA의 관세인하 혜택을 가장 크게 볼 것이라는 분석에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인도 시장은 녹록지 않았다. 시장조사를 마친 백남수 한국기계산업진흥회 국제협력팀 과장은 “인도시장 및 거래환경을 돌아보고서는 철저한 준비 없이 진출할 경우 실패할 소지가 크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인도 진출에 성공한 기업은 LG, 삼성, 현대자동차 등 일부 대기업에 그치는 것이 현실이다. 중견·중소기업이 대거 진출한 중국에 비하면 아직 인도와 한국과의 관계는 소원한 편이다. 인도의 수입액 중 한국기업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7∼2008년 2.4%로 국가별 순위 12위에 머물렀다. 2000∼2009년 인도에 유입된 해외직접투자(FDI) 규모에서도 한국은 16위(0.5%)에 그쳤다.
하지만 틈새시장의 수요를 잘 읽고 현지 판매망을 잘 구축한다면 인도시장에서 성공하기가 어렵지만은 않다는 것이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 관계자들의 조언이다.
제약업체인 에스디는 값비싼 검사장비 없이 혈액 한 방울로 에이즈바이러스(HIV), 말라리아, 간염 감염 여부를 간편하게 검사하는 ‘진단 키트’의 인도 판매에 성공했다. 이 회사의 인도 판매량은 2007년 250만 달러에서 2008년 750만 달러로 크게 늘었다. 지난해는 1300만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전망된다. 이 회사는 거대한 인구, 부족한 의료시설, 전력공급 부족 등의 시장조건을 읽고 인도시장에 과감히 도전했다. 에스디 측은 “믿을 만한 현지 인력을 확보한 뒤 힘을 실어준 것이 성공의 열쇠였다”고 말했다. 락앤락도 인도 전용 소스통이나 인도 전통 빵을 담을 수 있는 밀폐용기를 내놓아 연간 300%의 매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홍석빈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인도는 소매유통, 인프라 공공사업, 공기업 민영화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시장”이라고 분석했다.
이순철 부산외국어대 러시아인도통상학부 교수는 중소기업의 인도 진출 전략연구에서 “CEPA 발효를 계기로 중소기업의 인도 진출 성공사례를 만들려면 정부가 중소기업지원센터 설립, 수출유망 품목 발굴 및 지원, 대기업과의 협력 프로그램 마련 등의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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