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BRAND]석동빈 기자의 ‘Driven’/‘핸들링 무적’

  • Array
  • 입력 2009년 12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피칭 - 롤링 억제 스포츠카에 버금… 출렁임이 없다


정지상태서 시속 100㎞까지 6.7초 만에 도달
스티어링 휠 열선, 시트 길이조절 등 다양한 편의장치 눈길

지금까지 기아자동차는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한 분야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 야심작으로 발표한 ‘K7’은 전륜구동 대형급으로는 세계 최고수준의 핸들링을 갖춘 스포츠세단으로 평가된다. 혼다, 알파로메오, 피아트, 푸조 등도 핸들링이 뛰어난 전륜구동 자동차를 내놓긴 하지만 모두 소형차나 쿠페 또는 해치백 모델이지 길이가 5m에 육박하는 4도어 세단은 없다.

기아차는 준중형 포르테와 포르테 쿱에 이어 편안함이 초점이 되는 준대형 세단에 이르기까지 디자인과 핸들링이 젊은 차를 만드는 브랜드로 방향을 설정한 듯하다. 형제 브랜드인 현대차와 확실한 차별을 이루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스포츠세단으로 탄생한 K7 속으로 들어가봤다. 시승한 모델은 VG350 풀옵션이다.

○ 세련된 외부 디자인과 인테리어

차체의 비율이나 사용된 선(線)들이 차분한 안정감을 주면서도 보수적인 느낌이 없이 세련됐다. 전면부와 후면부의 조화나 차체와 휠의 매칭도 돋보인다. 전조등과 제동등에 면발광식 램프를 설치한 것도 차의 분위기를 살려준다. 매립식 머플러팁도 차체의 디자인과 조화를 이뤄 전체적으로 참 잘 빚어냈다는 생각이다. 일본산을 넘어서 독일산 럭셔리 세단의 냄새까지 풍긴다.

실내로 들어오면 하얀색의 가죽시트가 먼저 눈에 띈다. 흰색이어서 때는 많이 타겠지만 이처럼 화사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지금까지 국산 자동차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파 가죽을 사용해 시트의 표면이 아주 부드럽고 촉감이 좋다. 가죽으로 만들기 쉽지 않았을 아치형 헤드레스트 디자인도 칭찬해줄 만하다. 밤에는 빛의 향연이 벌어진다. 도어트림과 대시보드 중간에 붉은색 무드조명 라인이 마련돼 있고 천장엔 파르스름한 대형 발광다이오드(LED) 무드조명이 들어오면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내장재의 조립 품질도 우수하다.

그러나 지적하고 싶은 것도 없진 않다. 대시보드와 도어트림 상단은 터치감이 부드러운 소프트스킨 재질을 사용했지만 하단으로 내려가면 소형차급의 딱딱한 플라스틱 재질로 바뀐다. 소프트스킨 적게 써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란 말이 나올 법하다. 시트의 바느질도 전체적으로 깔끔했지만 곡선이 많이 들어가는 부분에 울퉁불퉁 불규칙한 마무리가 눈에 걸린다. 천장의 무드조명은 푸른빛이 감돌아 매우 차갑게 느껴진다. 그 불빛에 비친 여성의 얼굴을 상상해보진 않으셨는지. 스위치로 파란색뿐만 아니라 오렌지색 등 여러 가지로 무드등 색상을 선택하도록 했으면 더 좋았겠다.

마지막으로 피터 슈라이어 기아차 디자인총괄 부사장(CDO)의 디자인 솜씨는 충분히 인정하겠는데 바로 전 직장인 아우디의 모델들과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똑같은 제동등 디자인은 독창성 면에서 비난받지나 않을지 걱정된다.



○ 시원한 가속력에 연비도 나쁘진 않아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나올까. 3.5L급 엔진에 290마력이고 차의 성능을 감안하면 7.5초 안팎이겠지’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6.7초가 나왔다. 다시 여러 번 측정해도 역시 6.7∼7.0초 사이다. 덩치에 비해서 가벼운 차체에다 효율이 올라간 엔진과 6단 변속기, 반응이 빠른 가속페달이 합심해서 낸 결과다. 그런데 차 안에선 그렇게 빠르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출력이 초반부터 선형적으로 잘 분산돼서 나오고 서스펜션의 안정감이 높다는 이야기다.

그대로 계속 가속해 나가면 시속 180㎞는 19초 만에 도달한다. 그 이후는 기어비가 넓은 5단으로 바뀌면서 가속력이 둔해지고, 정밀 측정장비로 시속 246㎞ 때 속도제한장치가 작동해 더는 가속이 되지 않는다. 이때 계기반 속도도 246㎞로 측정장비와 일치했다. 연료소비효율(연비)은 손해를 보겠지만 5, 6단의 기어비를 약간만 타이트하게 하면 훨씬 더 스포티해질 것 같았다.

전체적인 연비는 배기량에 비해 괜찮게 나왔다. 서울시내 주행은 L당 7㎞ 안팎, 100㎞ 정속주행은 13.5㎞ 안팎이었고 절반씩 섞어서 주행을 하면 공인연비인 10.6㎞ 정도로 나왔다. 동력 성능에 대해선 큰 불만은 없지만 건조한 엔진음과 배기음을 스포티한 차의 성격에 맞게 조율하고, 변속기의 동력직결감을 약간 더 올리면 흠잡을 데가 없을 듯하다. 변속기를 드라이브(D)에 넣은 채 정차해 있을 때 살짝 진동이 감지되는 것도 걸렸다.

○ 돋보이는 운동 성능과 승차감의 조화

K7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코너링과 핸들링이 함께 빚어내는 운동 성능이다. 차를 타기 전에는 푹신한 패밀리세단의 전형인 현대자동차 ‘그랜저’의 기아버전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시승 1분 만에 그런 생각은 싹 바뀌었다. 가속과 감속에서 발생하는 피칭(앞뒤 흔들림)과 차로를 바꾸거나 커브길을 돌아나갈 때 느껴지는 롤링(좌우 흔들림)이 스포츠카에 버금갈 정도로 억제돼 있다. 급출발해도 차의 앞부분이 덜컥 들리지 않는다.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워도 짧게 한 번 까딱하고는 끝이다. 출렁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전륜 대형세단 중 최고의 스포티 핸들링으로도 연결된다. 핸들링이 좋은 혼다 중형급 ‘어코드’보다도 한 수 위다. 스키 활강대회에서 기문 사이를 요리조리 찾아다니며 재빠르게 빠져나가는 프로 선수처럼 운전자의 명령에 즉각 반응하고 원하는 지점까지 도달한다. 그때 다시 역동작을 취해도 차체는 힘들어하지 않고 신속히 방향을 바꾸는 능력을 보인다. 길게 이어지는 커브길에서 제법 속도를 높였지만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고 뉴트럴한 기분으로 돌아나간다. 덩치는 라이트헤비급이면서 움직임은 플라이급이다. 빠른 핸들링과 어울리게 가속페달의 반응도 상당히 신속했다.

시속 200㎞를 훌쩍 넘어서는 속도에서의 안정감도 크게 향상됐다. 불안하게 떠다니는 듯한 위화감은 크게 줄었고 운전자의 의도대로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독일 아우토반에 올라가도 힘들어하지 않을 정도는 된다. 다만 시승차만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속 120㎞를 넘어가면서 운전석 A필라 부근에서 들리는 비정상적인 바람소리는 ‘옥에 티’였다.

서스펜션이 스포티한 만큼 승차감이 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고, 오히려 핸들링 성능에 비해서는 승차감이 좋은 편이어서 최근 현대·기아차의 서스펜션 세팅 능력이 상당히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시트는 상당히 편하면서도 운전자세를 잡아줘 만족스러웠다.

다만 전체적으로는 ‘약간 가볍지 않나’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고급스럽고 운동성과 동력 성능, 승차감까지 좋지만 사람으로 치며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섀시’가 뿜어내는 무게감은 조금 부족했다. 자사(自社)의 중형차 ‘로체’의 차체를 키우고 고급옷을 입힌 느낌이랄까. 물론 극한의 테스트를 했을 때 느껴지는 부분이어서 일반 운전자와는 상관없을 수도 있다.

○ 화려한 편의장치의 경연장

다양한 편의장치는 사용법을 모두 익히는 데만 며칠은 걸릴 듯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스티어링 휠 열선과 시트 길이 조절 기능이다. 마침 영하 5도 이하에서 운전을 하게 됐는데 따뜻하게 데워지는 운전대의 고마움은 경험해본 사람만 안다. 시트 안장 부분의 길이도 40㎜까지 확장돼 체형에 따라 편하게 세팅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차선 이탈 경보장치(LDWS) △크루즈 컨트롤 △하이패스 △후방디스플레이 △전후방 카메라 △와이퍼 결빙 방지장치 △타이어 공기압 경보 시스템 △오토 디포스 시스템 등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종합적인 완성도를 따져 볼 때 세계적으로도 경쟁력이 있는 모델로 판단된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