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내부 지식 유출하라, 외부 지식 유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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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1일 03시 00분


외부의 아이디어와 지식, 상용화 역량 등을 적극 활용하는 개방형 혁신 모델이 기술개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고 있다. 기업이 개방형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내부와 외부의 지식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 및 조직문화를 갖춰야 한다. DBR 사진
외부의 아이디어와 지식, 상용화 역량 등을 적극 활용하는 개방형 혁신 모델이 기술개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고 있다. 기업이 개방형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내부와 외부의 지식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 및 조직문화를 갖춰야 한다. DBR 사진
■ R&D 생산성 강화 새 화두 ‘개방형 혁신’

자체 역량에만 의존해 기술 개발 ‘폐쇄형 혁신’
제록스 경우처럼 급격한 환경변화에 대응 못해

P&G-IBM 기술특허 과감히 개방 후 매출 급증


기술개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연구개발(R&D) 분야의 생산성 강화가 기업의 중요한 과제로 부상했다. 특히 최근에는 내부 역량에만 의존하지 않고 외부 지식을 적극 수용해 경쟁력을 높이는 ‘개방형 혁신’ 모델이 확산되면서 기술개발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5호(11월 15일자)는 스페셜리포트로 R&D 분야의 생산성 강화 방안을 제시했다. 이 가운데 최근 화두로 등장한 개방형 혁신의 개념과 실천방안을 요약한다.

○ 폐쇄형 혁신의 한계

현대 정보기술(IT)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기업은 어디일까. IBM이나 애플, 인텔 등이 유력 후보로 떠오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의외로 복사기업체인 제록스를 꼽는다. 제록스의 팰러앨토리서치센터(PARC)는 레이저 프린팅, 분산 컴퓨팅, 네트워크의 표준인 이더넷,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 등 IT 산업의 물줄기를 바꾼 혁명적 기술을 줄줄이 개발했다.

정작 제록스는 이런 기술들의 성과를 거의 향유하지 못했다. 제록스가 제대로 활용한 것은 프린팅 관련 기술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애플, MS, 3COM, 어도비시스템스 등에서 꽃을 피웠다.

헨리 체스브로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의문을 갖고 100여 명에 달하는 제록스 임직원을 인터뷰했다. 그 결과 제록스는 경영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당시 최고의 관행, 즉 ‘베스트 프랙티스’를 추종했기 때문에 혁신적 기술의 사업화에 실패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제록스는 최고의 인재를 채용해 내부적으로 기술역량을 축적하고 이를 활용해 생산과 판매 서비스를 제공하는 폐쇄형 모델로 성장했다. 당시 우량기업들은 대부분 이런 폐쇄형 혁신(closed innovation)을 고집했고 이는 베스트 프랙티스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런 체제하에서는 주력사업과 연관성이 떨어지는 혁신적 기술이 회사 내에서 상용화되기 어려웠다. 결국 PARC 연구원들은 기술 상업화를 위해 벤처기업 등으로 옮겨갔다. 제록스의 사례는 폐쇄형 혁신 모델의 한계를 보여준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온 개념이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이다.

○ 개방형 혁신의 개념과 사례

개방형 혁신은 ‘내부의 혁신을 촉진하고 더 큰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외부의 지식 및 기술을 받아들이거나 내부의 지식을 유출하는 의도적 행동’을 의미한다. 이는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면서 자체 역량에 의존해 기술개발을 추진했던 폐쇄형 혁신 모델과 큰 차이가 난다. 개방형 혁신 모델에서는 외부의 아이디어가 기업 내부로 유입돼 연구개발 과정을 거쳐 상업화되기도 하며 자체 개발한 기술도 외부 기업에 의해 상용화되기도 한다.

개방형 혁신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생활용품업체인 P&G다. 이 회사의 A G 래플리 회장은 연구개발 예산이 연간 15억 달러에 달하지만 상용화된 기술의 비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내부 보고서를 접한 후 R&D 전략을 완전히 바꿨다. 자체 기술특허를 개방했고 외부와의 R&D 협력도 강화했다. 내부 연구원은 7500명이지만 외부 전문가는 150만 명이 넘는다는 판단에서다. 혁신적 상품의 50%를 외부에서 나온 아이디어로 만들겠다는 과감한 목표도 제시했다.

개방형 혁신으로 성과를 낸 대표적인 사례가 P&G의 ‘프링글스 프린트’다. 감자칩 프링글스에 이미지를 새기자는 아이디어를 실행하려면 온도와 습도가 매우 높은 제조공정 중에 프린트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몇 가지 새로운 기술이 필요했다. 과거 방식대로 내부 R&D에 의존했더라면 제품 출시까지 2년은 족히 걸렸다. P&G는 기술적 문제를 잘 정리해 외부 전문가에게 해결책을 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탈리아 제과점을 운영하던 한 대학교수에게서 해답이 나왔다. 워낙 좋은 대안이 제시됐기 때문에 제품개발에는 1년도 채 걸리지 않았고 이후 프링글스 매출은 두 자릿수로 뛰어올랐다.

과거 폐쇄형 혁신 모델을 고집했던 IBM도 인텔, 모토로라,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 외부 업체에 기술특허를 과감하게 개방해 새로운 수익원을 마련했다. 또 리눅스 관련 소스코드를 공개하는 한편 내·외부 아이디어를 흡수하기 위해 ‘이노베이션 잼’과 같은 대규모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인텔도 개방형 혁신으로 돌파구를 마련했고 구글이나 애플도 적극적인 개방 정책으로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만들었다.

○ 개방형 혁신을 위한 제도와 인프라 구축

개방형 혁신을 추진하면서 외부 전문가들과의 연결고리부터 찾으려는 기업이 많다. 하지만 내부의 개방성부터 먼저 돌아봐야 한다. 내부 연구원들조차 지식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외부 지식의 유입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P&G는 사내 전산망에 이노베이션넷(InnovationNet)을 만들어 전 세계 지사에서 흩어져 근무하는 연구원들이 자유롭게 지식을 교환하도록 유도했다. 개방형 혁신전략을 성공적으로 도입한 LG화학도 ‘테크페어(Tech Fair)’ 같은 공식행사나 다양한 비공식 모임을 통해 연구원들 간 협력을 이끌어냈다.

개방형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외부 전문인력과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이노센티브(Innocentive)나 나인시그마(Ninesigma) 같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보한 기술 중개 사이트를 이용하면 손쉽게 외부 전문가들과 협력할 수 있다. 또 개방형 혁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담조직도 필요하다. LG화학은 ‘개방형 혁신 추진팀’을 구성해 각종 제도적 장치와 인프라 구축활동을 벌였다. 이 밖에 외부에서 들여온 아이디어나 지식에 대해 조직원들이 개방적 태도를 갖도록 조직문화를 개선해야 개방형 혁신이 성과를 낼 수 있다.

김남국 기자 march@donga.com



국내 첫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5호(2009년 11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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