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문고리는 잡았지만…

  • 입력 2009년 9월 11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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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재정장관-李한은총재 엇갈리는 ‘탈출 타이밍’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9일 주한 유럽연합상공회의소(EUCCK) 초청 강연에서 “경기회복세가 공고해질 때까지 적극적 재정·통화정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수차례 언급했던 ‘출구전략(Exit Strategy) 시기상조론’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하루 뒤인 10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기준금리 동결 결정을 내린 금융통화위원회 회의가 끝난 뒤 “판단과 집행은 우리(한은)의 몫이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기준금리 연내 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금융시장에서 받아들여졌다. 또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서 강조했던 출구전략 시기상조론에 대해 중앙은행 총재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을 드러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 이성태 “버블은 안돼”
“저금리로 부동산 과열땐
금융완화정책 수정 불가피
최종판단-집행은 우리 몫”

○ 윤증현 “경기회복 본 뒤…”
“고용부진 등 불안요인 여전
민간 자생적 회복력 미약
긴축땐 더블딥 빠질수도”

○ ‘부동산 버블’이 두려운 이성태

금융시장은 금통위가 열리기 전부터 이 총재의 발언 수위를 주목해 왔다. 그는 ‘독불장군’처럼 비치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저금리의 폐해를 방치해선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한 원칙론자로 분류된다. 저금리 기조 속의 부동산시장 과열에 대해 이 총재가 어떤 언급을 하는지는 향후 금리인상 시기를 가늠할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이 총재는 경기의 가장 큰 불안요소로 부동산 가격을 꼽았다. 그는 “주택시장의 상황이 자꾸 나빠지면 저금리 정책의 혜택보다 손실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판단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그럴 경우 현재의 금융완화정책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부동산시장의 불안 양상이 확산되면 적극적인 출구전략의 신호탄인 ‘금리 인상’이라는 칼을 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에서 보듯 주택가격이 계속 오른다는 기대감에 빚을 끌어서 집을 사들이면 결국 버블의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이 총재의 인식이다. 그의 발언에는 중앙은행이 금리인상 카드를 꺼내기 전에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것을 주문하는 뜻도 담겨 있다.

6월 말 현재 가계부채는 697조7493억 원으로 1년 전(660조3060억 원)보다 5.7% 늘어나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데도 주택담보대출은 매달 3조∼4조 원씩 증가하고 있다.

○ 경기회복 확인하고 싶은 윤증현

이 총재에 비해 윤 장관은 매우 조심스럽다. “부동산 문제는 정부 경제운용의 최대 아킬레스건”이라고 밝히면서도 “경제회복 기조가 확고해질 때까진 확장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최근에도 내년 예산안의 편성 방향을 설명하면서 “확장적 재정정책을 통해 경제위기 극복 노력을 지속하면서 동시에 중기적으로는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경제가 회복국면에 접어들고 있지만 금융시장 불안 재연, 고용 부진, 신종 인플루엔자 확산 등 불안 요인이 산재한 만큼 현 시점에서 재정·통화정책이 긴축으로 돌아서면 더블딥(이중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 윤 장관의 걱정이다. 경기, 물가, 자산가격 등 금리 결정의 3대 요소 가운데 이 총재가 자산가격의 거품을 염려하고 있다면 윤 장관은 경기회복세의 가시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경제성장은 상당 부분 정부의 재정효과에 따른 것이며, 아직까지 민간의 자생적인 경기회복력은 미약하다는 데 있다. 올 2분기(4∼6월) 성장률이 전기 대비 2.6%까지 치솟았지만 이 중 재정효과의 기여도가 1.4%포인트나 됐다. 뒤집어 말하면 민간의 설비투자나 소비가 경제회복에 기여한 정도는 아직 미미하다는 의미다.

○ 李총재 경고에 尹장관 어떻게 답할까

이제 시장의 관심사는 금리 인상 시기에 모아지고 있다. 이 총재가 금리를 무기로 부동산시장에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날린 만큼 금리 인상은 시간문제가 됐다. 그가 이날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가장 먼저 금리를 올린 이스라엘 사례를 언급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중앙은행은 작년 9월 미국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4.25%였던 기준금리를 6차례에 걸쳐 0.5%까지 낮췄다가 지난달 24일 0.75%로 높인다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한은이 올해 안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은 크지 않고, 금리를 올리더라도 소폭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정부가 이 총재의 발언을 존중하는 뜻에서 부동산 시장에 국한된 규제조치를 내놓고, 이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면 금리인상의 시기가 늦춰질 수 있다고 본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금융연구실장은 “이 총재가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효과를 보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은 연내에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서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길 기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아직은 이르다” 전문가 찬반론 “더는 못늦춘다”

“민간보다 정부주도의 회복세일 뿐”
○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

경기는 아직 민간보다는 정부 주도로만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물가상승률도 그다지 높지 않아 경기와 물가만 봐서는 일단 금리 인상 필요성이 없다. 다만 걱정되는 게 부동산시장인데, 총부채상환비율(DTI) 적용 확대 등 최근에 취한 조치가 있으니 우선 지켜봐야 한다. 벌써부터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낼 상황이 아니다.

“재건축 규제로 부동산 잡으면 돼”
○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요즘 부동산은 재건축 아파트의 시세가 올라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는 재건축 규제를 강화해 안정시키는 게 낫다. 원인을 놔두고 금리만 올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지 않아도 시중금리는 이미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 괜히 기준금리까지 올렸다가는 가계부채만 늘어날 것이고, 추후 경기회복에도 부담이 된다.

“2차 경기하강 가능성 고려해야”
○ 주이환 KB투자증권 수석연구원

과거의 글로벌 경기침체 사례를 보면 대체로 ‘W’자 형태로 회복됐다. 즉 2차 경기 하강이 발생할 수 있고, 그 시점은 내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출구전략 얘기가 나오는 건 곤란하다. 내년 재정지출이 지금보다 축소될 가능성이 큰 만큼 그때 가서 상황을 종합적으로 본 뒤 금리 인상을 고려해도 된다.

“재정지출 계속 늘면 버블 불보듯”
○ 최석원 삼성증권 채권분석파트장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라면 하루빨리 출구전략을 단행해야 한다. DTI 확대 등 최근 부동산 정책의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금리 인상보다 더 급한 것이 재정지출의 축소다. 자칫 시기를 놓치고 버블이 생기면 미래에 다시 고통이 찾아올 수 있다.

“부동산 값은 한번 뛰면 통제 불능”
○ 이종우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금리는 두 달 전부터 올렸어야 한다. 부동산 가격은 한 번 급등하기 시작하면 통제가 안 된다. 이 경우 나중에 훨씬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한다. 부동산은 국민 생활과 직결돼 있는 문제다. 금리를 올리면 흔히 경제가 망가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2%였던 금리를 2.5% 정도로 올린다고 큰 문제가 터지진 않는다.

“인플레-산업 구조조정 지연 우려”
○ 신동준 현대증권 채권분석팀장

올 11월이나 12월에는 금리 인상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하루 빨리 하는 게 좋다. 지금 같은 저금리가 유지된다면 부동산 등 자산가격의 버블이 생길 수 있고, 향후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있다. 또 중소기업 등 산업계 구조조정도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금리는 ‘소잡는 칼’… 인상때 파급효과는
빚많은 가계 이자늘어 실질소득 감소
통화량 줄어 물가 안정-집값 하락도

경제학자들은 금리인상을 ‘소 잡는 칼’에 비유하곤 한다. 그만큼 강도가 세고 한번 휘두르면 효과도 크다는 뜻이다.

우선 금리를 올리면 가계의 부채부담이 커진다. 은행 빚이 많은 가계는 금리 상승으로 더 많은 이자를 내야 해 실질소득이 감소한다. 또 증시와 부동산시장으로 유입되는 자금이 줄면서 보유자산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금리가 3%포인트 오르고 부동산가격 및 주가가 20% 하락할 경우 집, 예금, 주식 등으로 4억2000만 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던 사람의 순자산은 3억3300만 원 정도로 줄어든다.

기업은 금융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할 때 종전보다 높은 금리를 부담해야 해 자금조달이 어려워진다. 설비투자를 앞두고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기업이나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이 힘들어질 수 있다.

거시경제 측면에선 물가하락 효과가 나타난다. 금리인상으로 시중에 도는 통화량이 줄고 물건을 사려는 수요가 감소함에 따라 물가가 전반적으로 안정세를 보이는 것이다. 기준금리 인상을 계기로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높이면 은행 돈을 빌려 집을 사려는 수요가 줄어 집값이 하락할 수도 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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