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매물 ‘쏙’… 배짱 호가 판친다

  • 입력 2009년 8월 25일 03시 06분


■ 가을 성수기 앞둔 부동산시장 현장 취재

서울 강동구 일부지역 1주일새 1000만원 급등
주택구입 관망세 늘어 수급 불균형 부채질

“속이 다 후련합니다.”

23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아파트단지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앞에서 만난 주부 정모 씨(34)는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벗었다는 후련함 때문인지 환한 웃음을 지었다. 정 씨는 한신아파트 119m² 전세계약을 2억6000만 원에 했다. 연초 전세금 시세가 1억8000만 원까지 떨어졌던 아파트였지만 가격이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더는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정 씨는 “며칠 전에 2억5000만 원짜리 전세가 나왔다고 해서 다음 날 전화했더니 매물이 나온 날 저녁에 4명이나 찾아왔고 바로 계약이 끝났다고 들었다”며 “바닥이나 벽지 싱크대 등이 좀 낡았지만 주인이 계약을 안 한다고 할까 봐 수리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연초부터 서울 강남구, 송파구를 중심으로 들썩인 전세 대란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서울 강남지역에서 시작된 전세금 급등현상은 7, 8월 장마, 휴가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동구 등 인근 지역으로 번지며 전세매물을 찾는 세입자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서울 양천구 목동 목동신시가지2단지 아파트에서 만난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는 “전세금이 급등하면서 세입자를 찾는 데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시세보다 1000만∼2000만 원씩 높여 ‘배짱 호가’를 부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마저도 구하기 힘든 상황이라 전세 수요는 신시가지아파트 단지를 지나 인근 신정동이나 9호선 염창역 근처 주택가까지 이동하는 양상이다.

이달 21일을 기준으로 서울의 아파트 전세금은 일주일 동안 0.15% 올라 전주와 비교해 상승폭이 더 커졌다. 강남지역의 수요자가 몰린 서울 강동구의 전세금 상승률은 0.37%에 달했다. 둔촌동 동아아파트나 강일동 강일리버파크 소형 평형대는 일주일 사이 전세금이 500만∼1000만 원씩 급등했다. 매물이 줄어들고 전세금이 오르자 최근에는 그나마 도심으로 접근하기 수월한 관악구, 금천구 등으로 수요가 옮겨가고 있다. 경기 용인시나 수원시 등 서울로 출퇴근할 수 있는 경기 지역까지 눈을 돌리는 사람들도 있다.

서울 강동구 강일동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는 “수리가 안 됐을 뿐더러 위치나 구조가 좋지 않은 집도 주인이 부르는 게 값”이라고 말했다.

전세시장이 연초부터 불안해진 것은 주택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2007년부터 정부에서 공급을 억제하면서 올해 신규 아파트 입주물량은 3만1000여 채로 지난해 4만9000여 채에 비해 크게 줄었다. 반면 지난해 말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자 불확실한 장세에서 집을 매매하기보다는 전세를 재계약하면서 시세를 관망하는 사람들로 전세 수요는 오히려 늘었다. 부동산정보업체 스피드뱅크의 김은경 리서치팀장은 “주요 재건축사업이 늦어지는 등 서울 시내 신규 공급은 급격히 위축된 반면 수요는 늘어 시장이 불안정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중소형 주택 공급 확대”… 전세난 잡기엔 역부족

서울의 전세대란이 수도권으로 옮겨 붙자 국토해양부는 23일 전세 수요가 많은 중소형 주택 공급 확대와 전세금 지원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전세시장 안정화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정부의 전세 대책에 대해 전문가들은 중장기적 공급 확대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만 연초부터 들썩였던 수도권 전세시장을 단기간에 붙잡기는 역부족이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도시형 생활주택의 건설자금을 건설주에게 지원하고 오피스텔의 바닥 난방 허용 기준을 확대해 주거형 오피스텔 공급을 늘리기로 했다. 그러나 전세금이 하루가 다르게 급등하는 상황에서 공급까지 최소 6개월∼1년이 소요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올 하반기까지 시장의 불안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또 주택기금의 전세자금 대출 규모를 확대하고 정부의 전세대출 보증 한도를 1억 원에서 2억 원으로 늘린 대책도 전세난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에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써브 함영진 실장은 “정부의 보증 확대는 자금 부담을 덜어 전세금 상승폭을 상쇄할 수는 있겠지만 수요가 몰리는 지역의 아파트 전세금이 이미 2억∼3억 원대로 급등한 것을 고려하면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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