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生死 길목 ‘두 개의 하루’

  • 입력 2009년 5월 23일 02시 59분


勞 “모두 살려라” 공장봉쇄 파업… 使 “절반이라도 살려야” 채권단에 읍소

22일 오후 경기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노조의 총파업 결의대회가 열린 이곳에는 천막 15개가 늘어서 있었다. 정문에서 가장 가까운 천막에 권지영 씨(35·여)와 쌍용차 노동조합원 부인 10여 명이 있었다. ‘우리 아빠의 일자리를 지켜주세요’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린 천막이었다. 천막 밖에는 자칫 무기로 돌변할 수도 있는 긴 대나무 막대에 묶인 붉은 깃발들이 바람에 휘날렸다.

권 씨는 아홉 살짜리 큰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세 살배기 둘째는 데리고 대회장에 왔다. “오는데 왜 고민이 없었겠어요. 아이들 생각하면 제가 어디라도 나가서, 설거지라도 해서 돈을 벌어 우선 살아야지 싶은데…. 우리가, 우리 남편이 마치 일을 게을리 해서 회사가 이렇게 된 것처럼 사람들이 보는 게 너무 억울하고 답답해서 나왔어요.” 쌍용차 노조원 700여 명(회사 측 추산)은 이날 밤 미리 준비한 컨테이너 4개로 공장 정문을 막고 본사 출입구를 자물쇠로 잠근 후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같은 시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파산4부에서는 쌍용차의 회생 절차 지속 여부를 논의하는 채권단 회의가 열렸다. 쌍용차 이유일 법정관리인은 법정에 나가 재판부와 채권단에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할 테니 회사를 살려 달라’고 호소했다.

채권단은 이날 회사 측에 9월 15일까지 회생계획안을 제출하도록 시간을 줬다. 그러나 구조조정과 신규자금 조달에 실패하면 회생 절차를 중단하고 기업을 청산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이 관리인은 법원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평택공장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점검했다. “지금 현장 상황은 어떤가요? 생산 시설이 훼손되면 끝장입니다.” 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채권단 회의가 진행되는 사이에 공장은 일부 노조원들에게 점거당하고 있었다.

쌍용차는 대주주였던 중국 상하이차가 1월 초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기업회생절차(옛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회사 측은 지난달 초 전체 직원의 37%에 이르는 2646명의 인력을 줄이기로 하고 희망퇴직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회사에는 당장 퇴직자들에게 줄 돈도 없었다. 구조조정 비용이라도 마련하기 위해 정부와 채권단, 경기도, 평택시 등을 쫓아다니며 지원을 호소했지만 반응은 냉랭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노조는 “같이 일하던 동료 2명 중 1명이 집에 가야 하는 구조조정에 반대한다”며 총파업을 선언했다. 권 씨와 같은 생각을 가진 쌍용차 노조와 가족들은 ‘다 같이 살기 위해’ 대회장을 찾았지만 이날 파업은 현실적으로 쌍용차에는 ‘다 같이 죽는 길’이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평택=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법정관리인 “회사 살려야 직원도 살아”
노동자가족 “회사만 보고 살아왔는데…”

■ 이유일 법정관리인
“파업은 모두 죽자는 것” 노조측 만나 설득 또 설득

“첫 관계인 집회(채권단 회의)를 앞두고 총파업이라니요. 참 곤혹스럽습니다.”

22일 오전 7시 30분 서울사무소에 출근한 이유일 관리인(사진)은 곧바로 평택공장 상황을 보고 받고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어 오후에 있을 관계인 집회 답변 준비를 하던 도중 전국 대리점 대표들과 만났다. 동요하는 대리점 대표들을 설득하느라 점심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했다. 전날 오후에는 총파업을 선언한 노조 집행부를 만나 회사 상황을 설명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지금 상황은 노사 문제가 아닙니다. 채권단이 ‘노(NO)’ 하면 언제든 청산되는 겁니다. 정리해고를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회사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는 말입니다”

“회사 측은 일방적으로 노동자 희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측의 정리해고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노조가 끝까지 극단적인 파업을 한다면 회생계획안을 작성도 못해보고 청산될 수 있습니다”

이 관리인은 특히 노조의 파업에 민주노총이 개입한 데 대해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민주노총이 개입해 살아남은 회사가 있습니까. 저도 구조조정하는 게 가슴 아픕니다. 하지만 일단 회사는 살리고 봐야죠. 과거 대우자동차처럼 나중에 회사가 정상화되면 우선 복직시키면 되지 않습니까. 파업은 다 같이 죽자는 거지요.”

회사 측은 25일까지 1100명 정도 희망퇴직을 신청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분사(分社)를 통해 353명에게는 일자리를 만들어 줄 계획이다. 하지만 남은 인력에 대해선 다음 달 8일 예정대로 정리해고를 단행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차를 생산해야 월급도 주고, 퇴직금도 줄 텐데….” 법원으로 가기 위해 사무실을 나서던 이 관리인은 한동안 천장을 응시했다. 지난달 적자가 많이 나 퇴직금을 주고 나면 남은 직원들에게 이달 치 월급도 지급하지 못할 형편이다.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도 수만 명씩 감원하는 판인데….” 2시간에 걸친 채권단 회의가 끝난 뒤 회사에 돌아온 그는 밤늦게까지 대책 회의를 열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 직원 부인 권지영씨
“쫓겨나면 어떻게 사나” 아이 안고 시위현장 찾아

천막 바닥에는 소풍용 돗자리가 깔려 있었다. 권지영 씨(35·여)는 그날 밤에 자신이 이 천막에서 자야 할지, 아니면 집에 돌아갔다가 다음 날 다시 와야 할지 몰랐다. 속옷과 세면도구를 챙겨 나간 남편은 전날도 근처 천막에서 잤고, 그날 밤도, 아마 그 다음 날도 여기서 잘 것이다. 세 살짜리 둘째 아들이 옆에서 음료수를 달라며 권 씨를 보챘다. 공장에 와서 만난 남편의 동료와 그 부인들은 뒤숭숭한 표정이었다. 전날 밤 “당신은 정리해고 대상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으니 파업에 참여하지 마라” 등의 전화를 받은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그런 명단이 존재하는 건지, 그러면 전화를 못 받은 사람은 정리해고 대상자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지난해 12월부터 월급이 제 날짜에 안 나오더라고요. 마이너스 통장으로 버티고 있어요. 카드 빚을 졌고 친정에서도 돈을 빌렸어요. 관리비가 석 달 밀리니 독촉장이 오더라고요, 물이랑 전기 끊겠다고. 애들 학원비도 밀렸어요.”

조립1팀 소속으로 10년차 정규직 사원인 권 씨의 남편은 지난해에는 홀수 달에 140만 원 정도, 짝수 달에는 260만∼270만 원을 받았다. 올해 들어서 실제로 받은 돈은 한 달에 70만 원가량. 재작년 ‘회사 차 사기 운동’ 때 산 차 할부금을 매달 28만 원씩 갚아야 하고, 임대아파트에 들어가느라 빌린 대출금도 매달 10여만 원 갚아야 한다. 남은 30만 원으로 4인 가족이 한 달을 생활해야 한다. 그나마 이달 월급은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른다. 남편 동료들 중에 보험과 적금을 깨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다. “요즘 일자리도 없다는데 우리는 나이도 먹고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이 회사만 보고 10년을 살았는데 회사를 나가라고 하면 어떡하죠?” 이날 결의대회에는 회사 측 추산으로 민주노총 금속노조에서 1500여 명, 쌍용차 조합원 700명가량이 참석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쌍용차를 위기에 빠뜨린 상하이차와 산업은행, 정부가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노동자에게 폭행을 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직원들 사이에서는 “금속노조 잔치네” “오늘 날이 쌀쌀하니 금속노조는 여기서 밤을 보내지 않고 다 빠져나갈 것”이라는 등의 말이 나오기도 했다.

평택=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