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빈 기자의 자동차 이야기]한국 모터스포츠의 봄날은…

  • 입력 2009년 3월 3일 02시 57분


봄오는 소리, 레이서의 심장은 뛰는데…

한국 모터스포츠의 봄날은 언제 올까요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면 자동차 레이서들의 심장은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보통 4월부터 그해의 레이스 일정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올해는 약간 무거운 분위기로 시즌이 시작되고 있는 듯합니다.

현재 제대로 자동차경주가 열릴 만한 시설은 국내에 경기 용인시 스피드웨이와 강원 태백시 태백모터파크 2곳인데 접근성 때문에 스피드웨이에서 굵직한 경기들이 대부분 열립니다. 그런데 올해는 스피드웨이의 내부 사정으로 서킷 개방시간이 예년에 비해 크게 줄어들면서 경기 시작이 5월로 한 달 늦춰졌고 CJ슈퍼레이스 등 4개 대회의 연간 경기 횟수도 예년 7회보다 1, 2회 감소할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보통 일주일에 3, 4일은 선수들이 스피드웨이에서 연습을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경기 직전에 하루 정도밖에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 사실상 연습 없이 경기를 치러야 할 상황입니다. 기자도 올해 CJ슈퍼레이스 슈퍼2000 클래스에서 현대자동차 투스카니 경주차를 탈 예정인데 연습 부족으로 중위권이라도 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모터스포츠 관계자들은 “그나마 올해 스피드웨이에서 경기가 열리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말합니다. 자칫하면 서킷을 아예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고 하네요.

스피드웨이가 문을 닫는다면 가뜩이나 저변 확대가 되지 않은 한국의 모터스포츠는 15년 전으로 후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도 현재 자동차사업과 전혀 관련이 없는 에버랜드가 스피드웨이를 운영하고 있는 것도 감사해야 할지 모릅니다.

미국 독일 일본 등 자동차 선진국에서는 자동차회사나 타이어회사, 지방자치단체 등이 직접 서킷을 운영하며 많은 경기가 열립니다. 어느 한 서킷의 운영사정에 따라 모터스포츠 전체가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반면 한국은 자동차문화가 늦게 시작됐고, 높은 부동산 가격 등 여러 가지 요인 때문에 접근이 쉬운 곳에 여러 개의 서킷을 만들 기회를 놓쳐버렸습니다. 자동차생산 5위국이라는 위상에 맞지 않는 현실인 것이죠.

현재 새로운 서킷 건설의 가능성이 점쳐지는 곳은 인천국제공항 근처의 용지가 사실상 전부입니다. 전남 영암에 서킷이 만들어지더라도 접근성 때문에 장기적인 흥행은 어렵다는 것이 모터스포츠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낭만적인 희망일지는 모르지만 자동차회사와 인천시가 나서서 인천 영종도에 멋진 서킷을 만들어 한국 모터스포츠의 산실이자 족쇄이기도 했던 스피드웨이를 벗어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올해 우울한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으로 국산 후륜구동 스포츠카의 원메이크 레이스가 열립니다.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쿠페 3800’ 클래스인데 상금도 국내 경기 사상 최대인 연간 1억2000만 원 정도가 될 예정입니다.

과거 명문 팀이었던 성우인디고가 2년 만에 다시 서킷으로 복귀하고, 연예인 류시원 씨가 팀106을 창단해 한류 열풍에도 일조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밖에 알스타즈, 에쓰오일, 킥스파오, 바보몰 등 10여 개 팀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계속 경기에 나선다네요.

척박한 현실 속에서 꿋꿋이 모터스포츠 부흥을 위해 힘쓰는 팀들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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