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아이팟 같은 ‘빅히트’ 찾아나선다

  • 입력 2009년 2월 12일 02시 55분


불량품 줄이는 관리경영→창의력 중시 확률경영

마케터 출신 CEO 급부상… 경영기조 변화 촉각

삼성그룹의 경영 기조가 ‘수율(收率)의 삼성’에서 ‘확률(確率)의 삼성’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수율은 불량률의 반대말로, 반도체 액정표시장치(LCD) 같은 부품소재산업의 생산 공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반대로 확률은 ‘가능성의 정도’란 의미로 휴대전화 TV 멀티미디어 제품 등에서 대박 히트 상품을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가 경영의 핵심이다.

그만큼 확률경영이 수율경영보다 더 공격적인 개념으로 상대적으로 큰 리스크를 안고 있는 셈이다.

이런 흐름을 본격화한 것은 지난달 삼성전자를 부품소재 중심의 디바이스 솔루션(DS) 부문과 완제품을 생산하는 디지털미디어 앤드 커뮤니케이션스(DMC) 부문으로 나눈 대대적인 조직 개편이었다. 당시 삼성 측은 “부품은 수율, 세트(제품)는 확률 싸움이다. 두 부문은 업(業)의 특성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삼성의 한 고위 임원은 11일 “삼성전자는 ‘반도체 신화’ ‘애니콜(휴대전화) 신화’를 이뤘지만 세계 시장을 뒤흔들 독창적인 빅히트 제품은 아직까지 만들어내지 못했다”며 “삼성전자의 이번 조직 개편은 본격적으로 확률 싸움에 나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2004년부터 ‘1총괄 1혁신 제품 추진 운동’을 벌여왔지만 그동안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2007년 초 경영전략회의에서 “2009년까지 세계 경쟁사의 사업을 포기시킬 정도로 차별화된 혁신 제품을 반드시 내놓으라”고 강한 질책성 독려를 했을 정도다.

이에 앞서 2006년 미국의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삼성이 ‘세계 최고 기업’이 되려면 일본 소니의 워크맨, 미국 애플의 아이팟같이 산업 전체를 뒤엎을 수 있는, 세대의 아이콘이 될 수 있는 ‘새로운 발명’을 해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삼성 관계자들은 “그동안 생산 공정, 인사관리 등 모든 영역에서 수율과 확률의 개념이 구분되지 않은 채 혼재돼 있었다”며 “이번 인사에서는 수율 산업에 맞는 수율형 관리자, 확률 산업에 맞는 확률형 경영자의 구분을 처음 시도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석유화학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 교체 폭이 컸던 이유 중 하나도 ‘창의적 신제품을 개발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확률의 비즈니스 측면도 강한데 그동안 너무 공정 관리의 수율 개념으로 접근해 온 것 아니냐는 반성’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설명이다.

삼성 안팎에서는 “엔지니어 출신인 황창규 전 삼성전자 기술총괄 사장이 전격 퇴진하고 대표적 마케터인 최지성 삼성전자 DMC부문 사장이 급부상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삼성그룹이 ‘공정 관리 잘하는 수율형 CEO’의 시대에서 ‘시장을 잘 읽고 한 방 터뜨릴 수 있는 확률형 CEO’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인 것이다.

특히 제당과 모직 사업에서 시작한 삼성그룹의 전통적 특징은 수율 개념의 ‘꼼꼼함(Attention to detail)’이었던 만큼 삼성의 이런 근본적 변화 시도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사외이사도 대폭 물갈이… “명망가보다 전문가 영입”

삼성그룹은 지난달 사상 최대 규모의 사장단 인사와 주요 계열사의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실시한 데 이어 다음 달 초순 열릴 예정인 주주총회를 앞두고 사외(社外)이사 진용도 혁신키로 했다.

복수의 삼성 임원들은 11일 “기존 명망가 위주의 사외이사 상당수가 임기 만료 등을 이유로 퇴진하고 ‘전문성’과 ‘윤리경영’의 기준으로 참신한 인물들이 새로 선정될 것”이라며 “계열사별로 새 사외이사 물색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검찰 법원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 이른바 ‘힘 있는 기관’ 출신 사외이사는 대부분 물러나고 각 계열사의 사업을 잘 이해하는 대학교수나 전문경영인 출신, 그리고 기업의 정도(正道)·윤리경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도덕성 높은 인사들이 주로 영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경우 사외이사 7명 중 5명이 3월 주주총회 때 임기가 만료되는데 이 중 3명이 각각 대법관, 서울지방국세청장, 법무부 출신이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4월 ‘10대 경영 쇄신안’을 발표하면서 8번째 항목으로 ‘사외이사들이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삼성과 직무상 연관이 있는 인사는 사외이사로 선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삼성 측은 “경영 쇄신안은 삼성의 대(對)국민 약속인 만큼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고위관계자 기존방침 확인…“인위적 인력 구조조정 없다”

삼성그룹이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다.

삼성 고위관계자는 11일 기자들과 만나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이미 밝혔고, 그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조직 통합으로 발생하는 잉여인력에게는 새로운 직무가 부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삼성전자가 1200명에 이르는 직원을 현장으로 전진 배치하기로 한 데 대해 “대상자 가운데 남은 업무 처리를 위해 최근까지 본사로 출근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거의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올해 삼성의 비용 절감 계획에 대해 이 관계자는 “몇조 원을 절감하겠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절감 노력을) 한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오전 열린 삼성 사장단협의회에서는 대통령외교안보비서관을 지낸 김병국 고려대 교수가 초청 강사로 참석해 ‘오바마 행정부와 국제정치’를 주제로 특강했다.

김 교수는 “세계 경제위기,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선 확대, 북한 핵문제 등 국제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수요’로 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힘과 질서를 ‘공급’이라고 봤을 때 수요가 공급보다 큰 것이 현재 위기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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