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정말 위기가 온다면 외환 아닌 실물서 시작될것”

  • 입력 2008년 9월 6일 02시 58분


앤디 셰 前모건스탠리 아태 수석 이코노미스트

“외국인 보유 채권의 만기로 인한 ‘금융위기’는 없을 것이다. 한국 시장은 이 정도의 변동성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성숙돼 있다. 그러나 수출 급감이나 부동산 가격 폭락은 한국 경제에 새로운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을 것이다. 미리 대비해야 한다.”

‘9월 위기설’로 시장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앤디 셰 전 모건스탠리 아시아태평양 지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5일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를 통해 한국 경제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요약하면 ‘9월 위기설’은 인정할 수 없지만 실물 부문의 위기는 경계해야 한다는 것. 부동산 가격 등이 뇌관으로 작용해 향후 경제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는 경고다.

그는 2006년 미국 부동산 가격의 폭락을 한발 앞서 예견하는 등 글로벌 증시 및 부동산 분야의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경제를 보는 통찰력이 뛰어나 한국과 중국 경제의 시장 흐름을 ‘족집게’처럼 맞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셰 씨는 2006년 모건스탠리를 나온 뒤 특정 금융회사에 소속을 두지 않고 중국 상하이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기자에게 보낸 e메일에는 자신을 ‘인디펜던트 이코노미스트(independent economist)’로 소개하고 있다.

○ “9월 금융위기는 없다”

셰 씨는 “한국은 과거와 달리 변동환율제를 적용해 시장의 변동성에 적응할 수 있다”며 “이달 만기가 돌아오는 69억 달러(약 7조 원) 규모의 외국인 보유 채권은 원화 약세를 부추기는 수준의 영향만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보유 채권의 만기와 외환보유액 부족으로 한국이 이달 금융위기를 맞을 것이란 일부 해외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그런 결론을 내렸는지(derive)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 경제 상황이 1997년 외환위기 당시와 유사하다는 시장의 우려에 대해서는 “1997년에는 기업부채와 누적된 경상수지 적자가 문제였지만 지금은 가계부채가 문제되는 것으로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다만 셰 씨는 주가 및 환율 급등락과 같은 한국의 금융시장 불안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세계 금융시장이 앞으로 1년은 혼돈 상태(turmoil)에 있을 것이고 한국은 대외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한국만 안정을 찾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는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서는 “정부가 환율 안정을 위해 외환보유액을 사용하는 것은 괜찮다. 한국 정부는 이 분야에서 좋은 기술(mechanism)을 갖고 있고, 외환보유액도 충분하다”고 했다.

○ “실물 부문을 잘 관리해야”

셰 씨는 한국 경제에 정말 위기가 온다면 금융이나 외환이 아닌 실물 부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만일 한국의 수출이 급격히 줄어들고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 경제 위기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주요 수출 대상국인 미국 유럽에 이어 중국의 경기마저 둔화되면 ‘수출 급감→경상수지 적자 폭 확대→유동성 부족→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또 지금까지는 은행의 대출 증가가 부동산 가격을 올렸지만 대출을 떠받쳤던 유동성이 위축되고 나면 부동산이 폭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위기가 오더라도 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경제 전체가 급격히 무너지기보다는 15년 전 일본처럼 기나긴 저(低)성장의 형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로는 ‘장기간의 저조한 경제 성장(stagnation)’을 꼽았다. 또 한국 정부가 환율 안정 같은 단기적 문제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한국 경제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유가 등 원자재 값은 오르고 있고 세계 각국의 경기는 몇 년간 안 좋을 것이다. 한국은 제조업 기반의 국가이며 수출 비중도 높다. 한국이 이러한 구조적 진퇴양난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앤디 셰

△1990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 박사

△1997∼2006년 모건스탠리 아시아태평양 지역 수석 이코노미스트 등 역임

△2001∼2005년 해외 투자정보지 ‘인스티튜셔널 인베스터스 매거진’이 추천한 아시아 지역 최고 이코노미스트

△2003년 중국 CCTV 와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한 중국 차세대 10명의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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