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ravel]바람의 섬 제주, 나는 바람의 신이 되었다

  • 입력 2008년 7월 21일 02시 52분


거리의 표정 바꾸는 소형 컨버터블의 매력

BMW 뉴650i 컨버터블을 타고

한라산 자락을 달려보았다

최근 들어 바뀐 거리풍경 가운데는 컨버터블(오픈카)도 한몫을 한다. 지붕을 벗어젖히고 푸른 하늘 아래 경쾌하게 질주하는 모습. 컨버터블은 직접 모는 드라이빙의 즐거움도 있지만 그것을 보는 것 자체도 즐겁다.

일단 오픈카에 오르면 자신이 주목의 대상이 됨을 직감한다. 그 뜨거운, 아니 따가운 시선―부러움과 질시를 두루 담은. 그런데 그 느낌을 은근히 즐기기 시작하는 순간, 당신은 도저히 치유할 수없는 심각한 ‘병’에 걸렸음을 알아야 한다. 이름 하여 ‘자동차 노출증’, 오픈카 신드롬이다. 그런 컨버터블의 매력, 어느 누구도 거부하지 못하니 그것이야말로 예방이 최선이다.

그런 오픈카를 달리고 싶은 분들. 아무리 보아도 제주도 만한 곳이 없다. 제주도의 도로 주변 풍광은 변화무쌍하다. 중산간도로에 올라 보라. 숲 향기 짙게 풍기는 숲길, 말과 소가 노니는 푸른 목장이 펼쳐진다. 한라산 횡단도로에 접어들면 해발 1200m 고지의 산중까지 섭렵한다. 해안은 또 어떻고. 바다에서 하늘로 이어지는 시투스카이(Sea to Sky)의 멋진 해안경관도로가 곳곳에 펼쳐진다. 이 섬에서라면 단연코 세계최고의 비경을 오감으로 즐기는 컨버터블 드라이빙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고 감히 장담한다.

푸조207CC, 미니 쿠퍼S, 아우디TT… 요즘 제주 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소형 컨버터블이다. 대게는 렌터카로 커플이나 어린아이를 동반한 젊은 부부가 주 고객이다. 여행이란 것이 ‘일상의 탈출’이라면 컨버터블 드라이빙이야말로 최고의 일탈 아닐까. 그리고 가끔은 생활의 활력을 위해 ‘파티’도 필요할 터. 그런 우리네 일상에서 컨버터블 드라이빙은 최고의 파티가 되기에 충분하다.

앙증맞은 소형 컨버터블이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제주의 해안도로. 거기에 BMW 뉴650i 컨버터블의 등장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초식동물만 노닐던 초원에 호랑이나 사자가 등장한 것만큼이나 현격한 변화다. BMW 뉴650i 컨버터블은 4인승의 대형차다. 게다가 최고출력 367마력(4800CC V8가솔린엔진)의 고성능이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속도를 내는 데 불과 5.6초밖에 걸리지 않는 럭셔리 명품 카다.

그런 호화로운 차가 지붕을 홀랑 벗기고 가죽으로 치장해 사치스러우리만큼 화려한 실내를 드러낸 모습이란. 슈퍼모델이 란제리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것만큼이나 시선을 끌 만했다. 그러다 보니 한껏 기분 내며 제주 섬을 누비던 소형 컨버터블 드라이버에게 이 차의 등장은 충격으로 다가갈 수밖에.

이 차를 운전하던 이틀간. 제주도가 내게 새로운 행성처럼 비친 것은 기대치 않았던 특별한 경험이었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기로서니 기껏해야 서울의 호화아파트 네 평 남짓한 가격(평당 4000만 원)에 불과(1억7280만 원)한 차 한 대에 올랐다고 수십 차례나 들락거렸던 섬이 외계행성처럼 다가올 줄이야. BMW 뉴650i 컨버터블은 그런 차였다.

나는 제주도 섬에 상륙한 BMW 뉴650i 컨버터블을 공항에서 픽업하자마자 곧바로 하귀∼애월의 해안도로로 내달렸다. 상쾌한 아침, 푸른 바다가 눈 코 입 귀 살갗 머리칼 그리고 목덜미로 느껴졌다. 그 공기가 어찌나 달콤한지 굳이 빨리 달릴 이유가 느껴지지 않았다. 제주도 해안에는 경관도로가 잘 정비돼 있다. 그래서 일주도로(1132호선)변에 있는 마을로 진입하면 곳곳에서 ‘해안도로’ 이정표를 만난다. 그렇게 다니다가 뜻밖의 비경과 조우했다. 그곳은 제주 섬의 북서쪽 모서리인 현경면(북제주군). 신창과 고산을 잇는 풍력 발전 단지였는데 드넓은 검돌해안의 바닷가에서는 대형 풍력발전기의 바람개비가 휙휙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발전기 사이로 길이 보였다. 몇몇 발전기를 해안에 가설하느라 검돌해안에 콘크리트로 차 한 대가 지날 만한 폭의 길을 낸 것이 었다. 때마침 썰물로 도로는 물 위로 드러났고 덕분에 해안 끝에 있는 발전기에 다다를 수 있었다. 거기서 바라다본 현경면의 해안가 풍경. 검돌에 둘러싸인 얕은 바다에서는 꼬부랑 할머니 해녀 10여 분이 성게를 잡느라 신나게 자맥질을 하고 계셨고 그 옆에서는 흰 물새가 물고기 사냥에 여념 없었다.

이튿날 아침. 이번에는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의 제주신라호텔을 등지고 한라산을 향해 달렸다. 한라산의 싱그러운 아침을 차안에서 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이날의 컨버터블 드라이빙. 밤새 낮게 드리웠던 구름 속에 갇혀 촉촉이 습기를 머금은 대기와 7월의 찬란한 태양 아래 잔뜩 물오른 신록의 초목이 한없이 뿜어대는 생기, 그리고 온몸을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이고 말 것처럼 나를 에워싼 진녹색의 숲 그늘이 나와 차를 감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치가 아닐까 하고. BMW 뉴650i 컨버터블을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기막힌 자연을 온전히 호흡하는 것이.

제주도=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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