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무는 물가 인상

  • 입력 2008년 7월 12일 03시 00분


가격 상승 요인 없어도 덩달아 올라… 인플레 기대심리 못잡으면 ‘악순환’ 우려

주부 배모(36·서울 은평구 녹번동) 씨는 최근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위한 여름방학 캠프를 알아보다가 깜짝 놀랐다. 초등학생 대상의 2박 3일 어린이 경제교육 캠프 참가비가 지난해 9만 원에서 올해 16만5000원으로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이나 행사 장소도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는데 참가비만 크게 오른 것.

배 씨는 “기름값, 밀가루값이 오른 것은 알겠지만 캠프비까지 올린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제 유가가 치솟으면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 심리가 외식과 사교육비 등의 일부 개인 서비스 요금으로 서서히 옮아 붙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 전기 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도 예상돼 ‘기대 인플레이션’이 임금 인상 압력으로 이어지고 이에 따라 다시 물가가 연쇄 상승하는 ‘악순환’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 여름방학 캠프 등 개인서비스 요금 들썩

11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04∼2007년 상반기와 올해 상반기의 개인서비스 물가 상승률을 비교한 결과 올해 상반기 분식점 라면값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3.2% 올랐다. 자장면은 12.7%, 김밥은 11.2%, 볶음밥은 9.0% 상승했다.

올해 6월 기준으로 밀가루 값은 지난해 12월에 비해 55.1% 오른 반면 쌀은 2.8% 올랐을 뿐이다. 볶음밥과 김밥은 가격상승 요인이 거의 없는데도 덩달아 오른 것이다.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서 분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손모(45) 씨는 “라면값을 올리면서 김밥 한 줄 값을 1000원에서 1500원으로 인상했다”며 “값을 올리기 전에 하루 150줄 정도 팔리던 김밥이 요즘 70∼80줄밖에 안 팔려서 다시 1300원으로 내릴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유가, 곡물가격 인상에서 시작된 물가 상승이 공산품에 이어 개인서비스 요금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3월 프로축구와 프로야구가 개막하면서 서울과 부산 등 일부 지역의 구장 입장료가 20% 정도 올랐다. 운동경기 관람료는 지난해까지 4년간 상반기 평균 3.2%오르고, 미용요금은 ―0.1% 내렸지만 올해 상반기에만 각각 8.5%, 4.4%로 상승했다.

김병진 캠프단체협의회 사무국장은 “2박 3일 캠프 참가비가 지난해 20만 원 선이었지만 올해는 25만∼30만 원 선으로 20% 이상 올랐다”며 “내용은 지난해와 비슷한데 최근 물가 인상 심리에 편승해 가격을 올리는 곳이 적지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 ‘인플레이션 고착화’ 가능성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0년부터 올해 5월까지 소비자 물가지수를 분석한 결과 수입 물가가 10% 오르면 국내 소비자물가는 35개월에 걸쳐 누적으로 2.9%의 추가 상승 압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4∼5월 수입물가 상승률이 38%인 점을 감안하면 국내 소비자 물가는 향후 3년간 연평균 6.1%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하반기에 전기 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도 예상되는 데다 기업 임금협상도 남아 있어 물가 불안에 대한 우려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행도 10일 금리를 동결하면서 ‘물가 상승-기대 인플레 심리 확산-임금 상승-추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임금-물가 악순환(wage-price spiral)’을 경고했다. 과거 1, 2차 오일쇼크 당시처럼 ‘인플레이션 고착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

한국은행에 따르면 임금이 10% 오르면 소비자 물가는 3.1%, 생산자 물가는 2.8% 오르는 변동 압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에 따르면 5월 말 현재 노사협약을 통한 임금인상률은 5.0%로 지난해 4.7%보다 0.3%포인트 올랐다. 물가 상승이 임금 인상 압력으로 아직 이어지지는 않고 있는 셈이다.

김동욱 경영자총연합회 경제조사팀장은 “올해 임금 상승률도 지난해와 비슷한 4% 후반∼5% 내외로 예상하고 있다”며 “다만 최근의 물가 인상이 임금 인상 압력으로 작용하지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주요 생필품의 관세 인하와 유통시장 개선 등을 통해 수입물가 상승이 국내 물가로 전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기업들은 기대 인플레이션 압력을 흡수할 수 있도록 생산성 향상으로 비용 요인을 흡수하고 노사가 고통분담을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마음 속 물가’ 잡아라▼

기대심리 미리 차단 못할땐

유가 내려도 물가 계속 올라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유가 급등이 과거 1, 2차 오일쇼크 때처럼 각 경제주체들 사이에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널리 퍼져 물가 상승을 더욱 증폭시키는 상황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차단하지 못하면 유가가 안정되더라도 물가는 지속적으로 오르는 ‘후폭풍’이 닥칠 수 있다.

1973년 10월 4차 중동전쟁이 나고 이어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생산량을 줄이면서 ‘1차 오일쇼크’가 시작됐다. 1973년 배럴당 평균 3.1달러이던 국제유가는 1974∼75년 평균 10.7달러로 3배 이상 급등했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973년 12.0%에서 1975년 5.9%로 떨어졌고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은 3.2%에서 25.3%로 올랐다.

당시 정부는 공산품 가격을 연간 10% 이상 올릴 때 승인을 받도록 하는 등 물가 안정에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동시에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해 대규모 설비 투자를 하며 재정지출을 늘렸고 이는 노동수요 증가와 임금인상 압력으로 돌아왔다. 1975년 전문기술직의 임금은 전년 대비 54.8% 올랐고 행정 및 관리직은 61.8% 올랐다.

국제유가는 1976년 이후 10달러대 초중반에서 소폭의 오름세를 보였지만 국내 물가는 계속 두 자릿수로 올랐다. 1976∼79년에 제조업분야의 실질임금상승률은 연평균 18.3%로 노동생산성 증가율의 2.2배였다.

송태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대 인플레이션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서는 총수요 확대 정책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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