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香)이 오감(五感) 가운데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다는 걸 아세요?”
LG생활건강에서 운영하는 향 연구소 ‘센베리 퍼퓸하우스’ 김병현(사진) 소장은 “감성 마케팅의 핵심은 바로 향기”라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LG생활건강에서 생산하는 화장품과 생활용품의 향을 개발한다.
○ 책꽂이에 시약병들 1만개 있어
서울 관악구 관악로 599 서울대 캠퍼스 안에 자리한 이 연구소의 문을 열자 상큼한 꽃향기가 났다. 여느 화학 연구실과 다를 바 없이 갈색 시약병이 나란히 늘어서 있지만 방 안을 가득 채운 꽃향기가 이채로웠다.
소장실에는 마치 도서관처럼 커다란 책꽂이가 늘어서 있었다. 책꽂이에는 책 대신 매니큐어 병처럼 생긴 시약병이 약 1만 개나 놓여 있었다. 여러 가지 향을 섞어 새로운 향을 만들어내는 조향(調香)을 할 때 쓰이는 ‘향 라이브러리’다.
새로운 향 한 가지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향은 100여 개. 15명의 조향사는 이 많은 향을 하루 종일 맡아야 한다. 빨리 피로해지는 후각의 특성상 비슷한 향을 오래 맡고 있으면 향을 구분하기가 어려워지기 십상이다.
이 연구소 조향사인 김후덕 차장이 ‘콧구멍 막기’ 비법을 공개했다.
“한쪽 콧구멍을 막고 향을 맡으면 막은 콧구멍의 후각세포는 사용되지 않아 양쪽 콧구멍을 번갈아 쓸 수 있죠. 정 힘들 땐 콧구멍에 바람을 쐬어 피로를 풀어주고요.”
○ 조향사들 기꺼이 ‘생체실험’?
손유선 조향사는 “치약의 종류에 따라 박하 향, 대나무 향, 소금 향 등을 각기 다른 비율로 섞어 치약 특유의 시원한 향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참살이 열풍으로 자연의 향이 각광받으면서 이 연구소는 최근 쌀뜨물 향이 나는 주방세제 ‘자연퐁’과 발아현미향이 나는 주방세제 ‘세이프 발아현미’를 개발했다.
생활용품 연구실의 조향사들은 제품 자체에서 나는 향뿐 아니라 제품을 사용한 뒤 남는 향에 대해서도 철저히 분석한다. 여성들의 머리에서 나는 샴푸 향기가 더 많은 남성의 마음을 설레게 할수록 샴푸 판매량도 덩달아 늘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향사들은 기꺼이 ‘생체실험’ 대상이 된다. ‘향기평가실’이라는 방에는 미용실에서 봄 직한 세면대가 설치돼 있었다. 실험 대상이 된 조향사의 모발을 두 갈래로 갈라 각각 다른 향을 내는 샴푸로 감은 뒤 머리에서 나는 향을 비교하는 것이다.
○ 좋은 향은 제품 다시 찾게 만들어
LG생활건강은 대전 유성구 대덕연구단지에 자리한 ‘LG생활건강 기술연구원’에서 화장품과 생활용품에 쓰이는 향을 연구해 오다 2006년 1월 이곳에 아예 향 전문 연구소를 꾸렸다. 마케팅에서 향기가 중요해지는 만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LG생활건강 본사의 마케팅팀과 가까이 있는 게 좋다는 판단에서다.
이 회사는 지난해 초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앞에 향수, 방향제, 샤워용품 등을 파는 ‘센베리 조향사의 집’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향에 대한 설문조사도 한다.
김 소장은 “수많은 아이스크림 중에서 왜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꾸준히 잘 팔리는지 생각해 보라”면서 “향은 소비자의 기분을 좋게 할 뿐 아니라 그 제품을 다시 찾게 만드는 중요한 마케팅 요소”라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