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전문가들 “재협상 할지, 보완협상 할지부터 협상을”

  • 입력 2008년 6월 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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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신행 前 농림수산부 장관

“재협상 어렵다면 자율규제 유도를”

“정부는 미국 정부와 ‘재협상’을 할지에 대한 협상부터 해야 합니다. 미국도 재협상에 응하는 것이 한미 관계를 위해서라도 좋은 만큼 응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허신행(사진) 전 농림수산부 장관은 3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날 정부가 미국에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출 중단을 요청한 데 대해 이같이 밝혔다.

1993년 농림부 장관으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국과의 우루과이라운드(UR) 쌀 시장 개방 협상을 이끌었던 허 전 장관은 “미국과의 통상 협상을 해본 경험을 떠올릴 때 자율규제협정 요구 이전에 재협상 여부에 대한 협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협상 여부에 대한 협상을 통해 우리 측의 요구를 관철하는 것이 최선이고, 재협상이 어렵다면 자율규제협정으로 유도해 내실 있는 협상을 전개하는 게 수순”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에 대해서도 “한미 우호관계를 훼손하고 싶지 않은 염려, 5대 농산물 수입국에 대한 배려, 미국산 쇠고기 불매운동으로 번져나갈 가능성, 끝까지 밀어붙이는 미국의 일방적 행동에 대한 세계적인 여론의 역풍 등을 감안할 때 (재협상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싶어 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월령 표시와 원산지 표시제를 강력히 실시하는 등 국내에서도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함께 내놓아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가 반(反)정부 운동으로까지 번진 것과 관련해 정부의 정책 접근 방식에 대해 질책했다.

특히 “협상 과정에서 필사즉생의 각오로 임하면서 핵심 내용을 중간에 국민에게 알려 신뢰를 획득해도 부족한 것이 협상 결과”라며 “이런 과정이 생략된 채 한미 정상회담에 맞춰 서둘러 내준 것 같은 인상을 줘 국민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에서는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에 포함된 부위가 한국 수출용 SRM에서 제외되는 등 협상 내용에도 문제가 있다”며 “이런 것이 광우병 불안감을 키웠는데도 수긍하기는커녕 전문가와 학자를 동원해 설득하려는 자세에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고 말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 최원목 이화여대 법대 교수

“월령 표시 의무화 별도 협정 바람직”

최원목(사진) 이화여대 법대 교수는 3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유통 및 판매 과정에서 월령 표시를 엄격히 의무화하는 국내법을 만든다면 국민 불안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날 미국에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한국 수출을 보류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전면 재협상보다는 ‘자율규제협정(VRA·Voluntary Restraint Agreements)’ 또는 ‘수출자율규제(VER·Voluntary Export Restriction)’에 가까운 조치로 풀이된다.

최 교수는 “VRA와 VER는 양국 정부 간 공식협정을 맺느냐 아니면 문서 없이 양국의 정치적 합의에 따라 이뤄지느냐 하는 차이가 있지만 미국 스스로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한국 수출을 통제한다는 점에서 내용은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는 양국 정부가 나서는 VRA와 VER를 모두 금지하고 있어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미 정부가 직접 나서는 대신 양국의 민간 육류수출입단체끼리 ‘미국의 쇠고기 수출업체들은 한국에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출하지 않겠다’는 자율 합의를 할 수도 있다.

최 교수는 “민간이 자율적으로 합의한다면 감시할 공권력이 없는 만큼 위반 가능성이 커 실효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한미 양국 간에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재협상 대신 쇠고기 월령 표시를 의무화하는 별도의 협정을 맺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도축 때부터 쇠고기의 월령을 확실히 표시하도록 하는 협정을 맺는다면 양국 정부의 통제 아래 제도가 효과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소비자들이 미국산 쇠고기의 월령을 정확히 알고 사먹을 수 있도록 법제화하자는 것이다.

최 교수는 “한미 양국 간 쇠고기 월령 표시 의무협정이 선행되면 월령을 제대로 표시한 쇠고기가 유통 및 판매될 수 있도록 국내법을 보강하는 절차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학교 급식에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이런 법을 만들어 불안을 해소하는 게 급선무”라고 덧붙였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30개월 이상 금지 美도 대화 나설것”

안세영(사진)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3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에 대해 국민이 우려하는 분야가 있다면 보완 협상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보완 협상은 국제 통상 관례에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안 교수는 한미 간 대표적인 보완 협상 사례로 지난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된 이후 정부가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환경과 노동 분야에 대해 협상한 것을 들었다.

그는 “하지만 전면 재협상은 명분이 떨어지고, 미국이 응하기도 힘들 것”이라며 “미국의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하도록 촉발할 수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안 교수는 “정부의 이번 요구는 국민이 걱정하는 30개월 이상 쇠고기와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 부위를 보완하는 성격”이라며 “한국 정부가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임을 미국도 이해하고 대화에 나설 것으로 본다”고 진단했다.

현재 상황에서 국제 통상 관례나 실익을 따져볼 때 미국 측이 대화를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안 교수의 분석이다. 한국에 반입될 미국산 쇠고기의 95%가 30개월 미만 쇠고기인 데다 30개월 이상은 주로 검사용이나 종우(種牛)용으로 수입되기 때문에 협상을 거부해 봐야 미국에 실익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이 ‘30개월 이상’을 고집해온 것은 시장 개방에 대한 상징성 때문이라는 것.

30개월 이상 쇠고기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으로 미국 쇠고기 수출업계가 자율적으로 30개월 미만 쇠고기의 수출을 금지하는 ‘수출자율규제’도 대안으로 꼽혔다. 1980년대 초 미국과 일본의 자동차수출규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측에서 일본산 자동차의 시장 잠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일본 자동차업계가 자율적으로 대미 수출을 일정 대수 이하로 규제한 적이 있다.

안 교수는 “쇠고기 문제도 이 같은 원리가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보완 협상을 하더라도 신인도 추락 등 한국이 치러야 할 국제적 비용이 적지 않다”고 우려했다.

안 교수는 행정고시 17회로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 무역정책과장 등을 지냈으며 대학으로 옮겨서도 통상을 전공해 왔다.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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