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심상찮다]<상>경제지표 어떻기에

  • 입력 2008년 4월 29일 02시 59분


“이러다간 3% 성장도 어려워” 정부가 직접 경고음

“경기가 정점을 통과해 하강국면에 진입했다.”(기획재정부)

“올해 성장률이 3%대가 될지, 4%대가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정부 고위 당국자)

정부가 현재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에 대해 ‘비상 사이렌’을 울리고 있다. 보통 정부는 ‘경제심리의 위축’을 우려해 민간에 비해 보수적으로 경기를 판단하고 낙관적으로 상황을 전망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재정부는 28일 한국 경제가 하강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처음으로 공식 선언했다. 성장률 소비 투자 물가 경상수지 고용 등 주요 경제지표들이 한결같이 악화되고 있다며 깊은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 점점 절박해지는 정부의 위기감

정부는 그동안 경기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의 강도를 점점 높여 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8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내수가 너무 위축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사실상 경기진작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강만수 재정부 장관은 15일 정례브리핑에서 “2분기부터 성장률이 더 떨어질 것이다. 당초 얘기했던 6% 성장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성장률 저하를 우려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25일 4·9총선에서 낙천, 낙선한 한나라당 의원 40여 명을 초청한 만찬 자리에서 “지금처럼 여러 가지 경제 여건이 안팎으로 어려우면, 심지어 1% 성장하면 다행이란 얘기도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재정부가 28일 청와대에서 이 대통령 주재로 열린 ‘투자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민관합동회의’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더욱 큰 위기감이 곳곳에 배어 있다.

‘성장 속도가 큰 폭으로 위축되고 있다’ ‘취업자 증가가 크게 부진한 모습이다’ ‘내수 부진이 더욱 심화될 우려가 있다’….

3일 ‘경제동향 보고서’(그린북)에서 “최근 한국경제는 수출 호조에 힘입어 그간의 상승 기조를 지속하고 있다”고 평가한 것을 감안하면 정부의 경제에 대한 인식이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급반전한 것이다.

재정부 고위 당국자는 “각종 경제지표들을 보면 어느 것 하나 우호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없다”며 “앞으로 경기위축세가 본격화되면 성장률이 3%대가 될지, 4%대가 될지 자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 내에서 3%대 성장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 성장 물가 경상수지… 모두 문제

정부가 이처럼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이유는 실제로 모든 지표가 급격하게 ‘아래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1분기 경제성장률은 전 분기에 비해 0.7% 오르는 데 그쳤다. 작년 4분기(1.6%)의 반 토막 수준이며 3년 3개월 만의 최저치다.

무엇보다도 내수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그동안 4%대 중반의 증가세를 이어오던 민간소비는 올해 1분기 3.5% 증가에 머물렀다. 올해 1분기 설비투자 증가율은 전기 대비 0.1%로 정체 상태였다.

국제 유가의 최고치 경신이 이어지면서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4%를 넘보고 있다. 지난해 28만 명이었던 취업자 증가는 올해 3월 18만 명 수준까지 떨어졌다.

경제를 떠받치는 ‘양 날개’ 가운데 하나인 내수 엔진이 꺼져가는 상황에서 또 다른 날개인 수출도 선진국 경기 등 대외 여건에 따라 증가율이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3월 소비자기대지수가 12개월 만에 기준치(100)를 밑돌고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하는 기업경기실사지수(BSI)가 계속 하락하는 등 경제심리가 악화되는 것도 정부가 우려하는 점이다.

경기선행지수, 재고출하, 장단기 금리차 축소, 고용사정 악화 등도 모두 향후 경기둔화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정부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경상수지 적자 규모, 취업자 증가 전망치를 모두 수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재정부는 이날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수정하지는 않았지만 주요 기관들이 최근 전망치를 4%대 초중반으로 하향 조정한 것을 인용해 간접적으로 성장률 전망치도 하향 조정할 계획임을 시사했다.

○ 민간 “위기까지는 아니지만 정부 인식이 맞다”

민간 전문가들은 대부분 ‘정부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며 정부의 경기 판단에 동의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현재의 경기가 위기 상황까지는 아니지만 하강국면에 접어든 것은 맞으며 하강 속도는 하반기로 갈수록 빨라질 것”이라며 “그 이유는 수출과 내수가 한꺼번에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임경묵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도 “아직 경기 하강은 완만한 상황이지만 국내총소득(GDI)은 1분기에 0%의 증가율을 보였다”며 “물가상승률이 높은데 소득은 거의 안 늘었으므로 현재 가계가 느끼는 체감경기는 훨씬 안 좋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과거에는 민간이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하면 정부는 ‘괜찮다’고 부인하는 양상이었는데 이번에는 정부가 먼저 나서서 우려를 표시하는 아이로니컬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부 태도에 대해 “일단 경기전망에 대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국민에게 가감 없이 알려 경기에 대한 국민의 기대 수준을 낮추는 동시에 경기부양에 대한 공감대 형성에 나서려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정기선 기자 ksch@donga.com

■“美 경기침체로 아시아지역 무역 줄어들 것”

‘경제 효자’ 수출도 만만찮다

내수 위축에도 불구하고 두 자릿수 성장률로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이 하반기부터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커져가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8일 ‘최근 수출 호조의 원인과 전망’ 보고서를 통해 “하반기 중 수출과 내수가 모두 둔화되면서 경제성장률이 4% 초반대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수출과 관련해 “미국의 경제 침체가 아시아 지역에 영향을 미치고, 이후 역내(域內) 무역이 둔화되면 한국 수출에 미치는 영향도 본격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이달 초 ‘2008년 세계 경제성장률’ 자료를 발표하며 1월의 전망치 4.1%를 다시 3.7%로 수정하며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1.5%에서 0.5%로 대폭 낮췄다. IMF는 유럽연합(EU)에도 “세계 금융시장의 혼란은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5개 유럽국가)의 성장률을 각각 0.75%포인트씩 끌어내리고 미국과 유럽의 성장률 둔화의 여파는 수출지향적인 아시아 국가에도 퍼져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의 1위 수출 시장으로 ‘베이징(北京) 올림픽’이 열리는 올해까지는 탄탄한 성장세가 기대되던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중국 국가통계국(NBS)이 최근 발표한 올해 1분기 성장률은 10.6%로 지난해 4분기의 11.7%에 비해 크게 둔화됐다.

1분기 대규모 폭설 피해뿐 아니라 대미(對美) 수출이 둔화된 데 따른 것이다. NBS는 “정부 당국의 긴축정책 및 세계 경기 둔화로 중국 경제의 둔화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 하반기에 이르면 한국 기업의 개도국 수출도 녹록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이재우 박사는 “선진국의 경기 둔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수출이 호조를 보인 것은 중국 러시아 등 개도국에 대한 수출이 늘어난 때문”이라며 “선진국의 경기 둔화가 개도국에 영향을 주는 올해 하반기부터는 이 지역에 대한 한국 기업의 수출도 둔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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