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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1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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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비자금 의혹을 조사 중인 조준웅 특별검사팀은 15일 오후 수사팀 최종 회의를 열어 기소 대상자 및 형사처벌 수위를 잠정 결정하고 수사 결과 발표문 작성에 들어갔다. 특검팀의 수사가 사실상 종결된 셈이다.
특검팀은 이르면 17일 수사 결과를 발표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이날 회의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 대해 3조 원대 계열사 차명주식을 보유한 채 1500억 원이 넘는 주식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로 불구속 기소 방침을 정했다.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은 이 회장과 공모한 혐의로 함께 불구속 기소된다.
이들에게는 그룹 경영권을 이 회장에게서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에게 넘기기 위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및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저가 발행하는 데 공모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도 적용된다.
▽이 회장은 불구속 기소=이 회장의 불구속 기소는 13년 만이다. 그는 1995년 8명의 다른 재벌 총수와 함께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 회장에게 조세포탈 혐의가 적용되면 차명주식 양도세 포탈 혐의로 기소되는 첫 사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내려지면 판례도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만큼 유무죄를 다투는 법리 공방도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도 차명계좌를 이용한 조세포탈 혐의로 대법원의 확정 판결까지 받았지만 그의 구체적인 혐의는 이자소득세 포탈이었다.
법조계에선 15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조세포탈 액수도 유례없이 큰 규모라는 평가가 많다.
▽에버랜드 사건 기소=이 회장에 대한 기소는 에버랜드 사건 검찰 고발 이후 7년 10개월 만이다. 전국 법대 교수 43명은 2000년 6월 이 회장 등 33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룹의 경영권이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 승계되는 과정에서 아버지인 이 회장이 모를 리 없을 것이라는 의혹이 법정에서 진실을 가리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 회장은 특검팀 소환 조사 때 “내가 지시한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삼성SDS 사건 개요도 에버랜드 사건과 비슷하지만 기소 방침은 다소 의외라는 얘기가 많다.
이 부회장과 김 사장 역시 경영권 불법 승계와 관련한 두 사건에 공모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다.
삼성화재의 10억 원대 비자금 의혹은 특검팀이 전통적인 의미의 비자금 혐의(횡령)를 적용한 유일한 사건이다. 특검팀은 황태선 사장 등을 기소하지만 전략기획실이 개입한 단서는 찾지 못했다.
▽금품 로비 등 무혐의=금품 로비와 관련한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는 단 한 가지도 신빙성 있게 소명된 것이 없다는 게 특검팀의 결론이다.
김 변호사는 김성호 국가정보원장에게 직접 금품을 건넸다고 주장했으나 특검팀은 김 변호사가 주장한 금품 전달 방법과 시기 등을 객관적으로 믿기 어려웠다고 한다.
특검팀은 김 변호사가 주장한 에버랜드 사건 증거 조작 의혹을 뒷받침할 증거도 찾아낼 수 없었다.
특히 1998년 12월 에버랜드가 매입한 삼성생명 주식 18%가 이 회장 소유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으나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없는 단순한 ‘의혹’으로 그쳤다.
삼성이 2002년 대선 전 구입한 국민주택채권 837억 원어치 가운데 삼성이 보유하고 있었다며 원본 및 사본을 제출한 443억3000만 원어치 채권의 유통 경로에서도 특검팀은 형사처벌을 할 만한 문제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특검 “우리가 수사 종결짓는 것이 원칙”▼
조준웅 특별검사팀 수사가 사실상 마무리되면서 특검팀이 검찰로 다시 인계할 사건이 있느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윤정석 특검보는 최근 특검팀이 검찰로 사건을 넘길 가능성에 대해 “수사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검찰에 인계할 내용이 있을지 모르겠다”면서도 “특검법상 수사 범위 안에 있는 것은 우리가 종결짓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검법이 정한 수사 대상 모두에 대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수사한 만큼 검찰에 다시 넘겨 조사하도록 할 사건은 없다는 얘기다. 대선 정국을 앞두고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 관련 수사가 사실상 종결됐음을 뜻한다.
검찰과 특검팀 주변에서는 특검팀 수사에 최고의 계좌추적 전문가들이 파견돼 광범위한 계좌추적을 벌였고, 5년을 넘긴 금융자료의 추적이 쉽지 않다는 점 등을 들어 다시 수사를 해도 별다른 결과를 찾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윤 특검보는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석 달간의 특검 활동에 대해 “이건희 삼성 회장의 좌우명이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다”며 “우리는 잘못된 것을 밝혀서 다루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정신으로 활동해 왔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에 대해 삼성 비자금 의혹을 처음 제기한 김용철 변호사나 일부 시민단체 등은 특검팀의 수사 기간과 수사 인력이 부족했다는 점 등을 지적하며 검찰이 다시 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