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 명가’ 샘표식품 경영권 분쟁 얼룩

  • 입력 2008년 4월 16일 03시 01분


60년의 역사를 지닌 ‘간장 명가(名家)’ 샘표식품이 경영권 분쟁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 회사 지분 29%를 가진 우리투자증권의 마르스1호 사모투자펀드(이하 마르스)가 공개매수를 통해 적대적 인수합병을 선언하고 나섰고 이에 대해 샘표식품 기존 경영진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외국계 자본이 아닌 국내 증권사가 출자한 토종 사모펀드가 기업 경영진의 도덕성과 경영 투명성을 문제 삼으며 회계장부 열람을 요구하거나 지분을 매입하는 등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것은 처음이어서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 다시 불붙은 경영권 분쟁

마르스는 이달 4일 샘표식품 주식 89만305주(20.03%)를 23일까지 주당 3만 원에 공개매수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샘표식품의 주요 주주는 마르스 29.97%,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 13.97%, 박 사장 특수관계인 17.49%, 기타 소액주주 38.57%로 구성돼 있다. 마르스가 공개매수에 성공하면 이 펀드의 샘표식품 지분은 50%로 늘어나 1대 주주가 된다.

마르스의 공개매수 사실이 알려진 후 샘표식품 주가는 한때 공개매수가인 3만 원을 훌쩍 넘어서기도 했다. 15일 주가는 2만9750원에 마감됐다.

이 회사의 경영권 분쟁은 10여년 전 대주주 일가의 집안 다툼에서부터 시작됐다.

박승복 회장이 1997년 대표이사직을 아들인 박진선 현 사장에게 넘겨주자 박승복 회장의 이복동생인 박승재(2006년 10월 사망) 전 사장 측이 반발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경영권 분쟁은 박승재 전 사장 측을 포함한 현 경영진의 반대파 14명이 2006년 9월 샘표식품 지분 24.1%를 우리투자증권에 넘기면서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 기존 경영진 배임이냐, 중소기업 흔들기냐

우리투자증권은 2006년 9월 지분 매입 직후 샘표식품 측을 찾아가 지분 보유 사실을 알리며 경영권에 참여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같은 해 샘표식품이 회계장부에서 비용을 축소해 순손실을 흑자로 둔갑시키다가 증권선물위원회에 적발되는 등 불투명한 경영 행태가 드러나자 우리투자증권은 2대주주로서 샘표식품 측에 해명을 요구했다.

우리투자증권 직접투자(PI)팀 남동규 이사는 “샘표식품은 ‘회사 기밀이라 알려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회사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며 “지난해 3월 주주총회에서 전체 등기이사 7명 가운데 우리 측 인사 2명을 사외이사로 선임해 달라고 제안했지만 이마저도 묵살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4년 영업이익률이 10.2%나 됐던 회사가 2006년 적자로 돌아서는 등 경영진의 방만한 경영으로 회사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샘표식품 경영진은 이에 대해 강력히 반박하고 있다.

상장회사협의회 회장과 식품공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승복 샘표식품 회장은 15일 서울 중구 필동 샘표식품 사옥에서 기자들과 만나 “부실한 회사도 아닌 멀쩡한 회사를 뒤흔드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진선 사장도 “마르스는 애초부터 회사와 직원, 주주들의 이해에는 관심이 없었다”며 “샘표식품을 인수해 구조조정한 다음 대기업에 팔아넘기겠다는 생각밖에 없다”고 주장하면서 마르스 측의 사외이사 추천을 계속 거부할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또 “모든 경영권 방어 논의가 대기업 위주로 진행되고 있어 중견기업으로선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허술하다”며 제도적인 보완을 촉구하기도 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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