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시장 통합법 시행령 입법예고

  • 입력 2008년 4월 6일 20시 31분


"기대 이상의 규제 완화다." "한국 증권업체들이 선진 투자은행(IB)으로 도약할 계기가 될 것이다."

6일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통합법) 시행령에 대한 증권업계의 반응은 대체로 이렇게 긍정적이었다.

반면 시중은행들은 시행령이 지나치게 증권업계에 유리하게 만들어져 역시 IB로 도약과 변신을 꾀하고 있는 은행들이 불리한 경쟁을 하게 됐다며 반발했다.

●투자회사 세분화해 진입 문턱 낮춰

시행령에 따르면 내년 2월 4일부터 증권회사 자산운용회사 선물회사 등이 나눠 맡던 다양한 업무들은 모두 '금융투자 업무'로 통합된다. 이에 따라 관련 회사들은 모두 '금융투자회사'로 분류되며 자본시장통합법의 적용을 받는다.

시행령은 금융투자회사 설립의 인가·등록 단위를 세분화해 시장 진입의 문턱을 낮췄다.

금융투자회사는 앞으로 △금융투자 관련 6개 업무(투자매매 투자중개 자산운용 신탁 투자일임 투자자문) △금융투자상품 종류 △투자자의 종류 등을 조합한 42개 세부 유형에서 자신들이 벌일 사업 영역을 정한 뒤 금융당국에 인가·등록을 신청하게 된다.

특정 업무만을 맡는 금융투자회사는 지금보다 적은 자본으로 회사를 세울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는 부동산에만 투자하는 자산운용사를 세울 때에 운용사 설립 자본금 규정(100억 원 이상)을 따라야 하지만 내년 2월부터는 20억 원이면 세울 수 있다.

다만 6개 금융투자영역을 전부 다루는 종합 금융투자회사가 되려면 현재 1000억 원인 자본금의 2배인 2000억 원이 필요하다.

진입이 쉬운 만큼 경쟁에서 밀린 회사는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도록 '퇴출 요건'을 신설했다. 영업 손실이 나 자기자본이 시장진입 당시 자기자본의 70% 이하로 떨어진 뒤 1년 동안 자본 확충을 못한 회사는 퇴출된다.

●"투자 성과에 따른 보수 차별화"

금융투자회사에는 그동안 은행에만 허용됐던 '개인-금융회사'의 소액지급 결제가 허용된다. 현재 증권사는 특정 은행 결제시스템을 이용해 소액지급결제를 하고 있어 개인 투자자들은 해당 은행을 이용할 때만 수수료가 면제되는 등의 불편이 있었다.

금융당국은 또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모(公募) 펀드에도 제한적으로 '성과 보수'를 허용하기로 했다. 예를 들면, 목표 수익률을 정하고 이를 초과하는 수익에 대해서는 추가로 펀드매니저에게 성과를 주는 방안이다. 지금까지는 너무 공격적인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 투자자 30인 이하의 '사모(私募)펀드'에만 허용됐지만 앞으로 거액 투자자(규모 미정)를 대상으로 하는 환매 금지형 펀드에는 성과보수를 허용하는 것.

국내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성과보수 허용되면 자산운용업계의 '무한경쟁'이 본격화된다"면서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상품이 개발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일반 투자자도 금융투자회사와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다양한 상품(장외파생상품)을 거래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과수원의 농장주는 특정 금융투자회사와 사과 가격의 폭락에 대비해 미리 일정한 가격으로 사과를 파는 선물(先物)계약을 맺을 수 있다.

투자자들의 펀드 선택을 돕기 위해 협회에 공시되는 펀드별 정보가 현재의 운용실적 외에 운용보수, 판매보수, 판매수수료 등으로 확대된다.

●금융투자회사에 M&A 위한 자금대출 허용

정부는 종합 금융투자회사가 기존 영업형태에서 벗어나 선진 투자은행(IB)들이 주력하는 인수합병(M&A)중개, 자기자본투자(PI) 등에 활발히 나설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홍영만 금융위 자본시장정책관은 "금융투자회사가 M&A중개 업무를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인수자에 인수 자금을 일시적으로 대출(신용공여)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라며 "다만 대출은 금융투자회사의 자기자본으로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국내에선 증권사엔 대출업무가 허용되지 않아 대출 여력이 있는 은행들이 '인수자' 측의 M&A 중개 업무를 주로 진행해왔다. 원활한 채권발행 업무를 위해 금융투자회사의 지급보증(단, 계열사 제외)도 허용하기로 했다. 신용이 낮은 중소기업의 채권 발행 등 회사채 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가다.

●한국판 골드만삭스 가능할까

증권업계에서는 이번 시행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금융투자회사의 인가등록 단위를 세분화해 영업의 특화, 전문화가 가능해지고, IB업무 활성화를 위한 지급보증, 대출의 허용 등 기대한 것 이상의 조치가 나왔다는 것.

한국투자증권 이철호 연구원은 "진입규제 완화로 위탁매매 수수료 수익에 의존하는 국내 증권사의 수익이 줄어들 우려가 있지만 투자은행 업무 규제가 완화돼 능력을 갖춘 증권사는 차별화 전략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에는 기업공개 등의 업무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증권사에만 은행의 고유 업무를 개방했다"고 비난했다.

법규 개정만으로 국내 금융투자회사가 단기간에 글로벌 수준의 IB를 성장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부정적 시각도 적지 않다. 지난해 국내에서 이뤄진 거래규모 상위 1~10위 M&A의 매각 주간사를 모두 외국계 증권사가 맡았을 정도로 국내 금융업이 아직까지 인력, 인적 네트워크, 선진 금융기법 면에서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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