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법 없는 ‘납품단가 딜레마’

  • 입력 2008년 3월 13일 03시 07분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 소속 레미콘 사업자 500여 명이 납품 단가 현실화 및 관급자재 입찰 참여 확대를 촉구하며 시위를 했다. 신원건 기자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 소속 레미콘 사업자 500여 명이 납품 단가 현실화 및 관급자재 입찰 참여 확대를 촉구하며 시위를 했다. 신원건 기자
중기 “원자재값 뛴만큼 올려야…”

대기업 “우리도 어려운건 마찬가지…”

12일 오후 3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중소기업중앙회 2층 회의실. 전국의 레미콘 회사 대표 24명이 어깨띠를 두른 채 단상 앞에 앉았다. 어깨띠에는 붉은 글씨로 ‘레미콘 원가보상 현실화하라’ 혹은 ‘레미콘 생산 중단은 건설사의 책임’이라고 적혀 있었다.

670여 회원사를 가진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건설업체들에 대해 레미콘의 납품단가를 현실화하라고 요구했다.

배조웅 서울경인레미콘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레미콘의 주된 원자재인 시멘트 가격이 1년도 안 돼 30.4%나 올랐지만 레미콘 가격은 제조원가를 밑돌고 있다”며 “레미콘 가격이 12% 이상 오르지 않으면 19일부터 무기한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원자재 가격 급등세가 이어지면서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에 대해 납품단가 인상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원자재 가격이 뛰고 있지만 납품 단가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달러당 원화 환율 상승세(원화 가치는 하락)로 원자재를 수입하는 중소기업의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 역시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여서 해법이 쉽지 않다.

○ 확산되는 단체행동 움직임

지난달 말 주물(鑄物)업계가 납품단가 인상을 요구하면서 시작된 중소기업의 단체행동은 레미콘 업계로 확산됐다.

레미콘 회사 대표들은 이날 기자회견 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의 ‘납품단가 현실화 및 관급자재 입찰 참여 확대 촉구를 위한 궐기대회’에 합류했다. 이날 궐기대회에는 전국 레미콘 회사 직원 500여 명이 모였다.

레미콘업계의 주장에 대해 건설회사의 자재 구매담당자들의 모임인 대한건설자재직협의회 이정훈 회장은 “레미콘 가격 인상에 대해서는 협상에 응할 의향도 있지만 레미콘 공급을 중단해 공사에 차질을 빚게 된다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소기업들의 단체행동 움직임은 다른 업계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아스콘)를 생산하는 한국아스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 김덕현 전무는 “지난해 2월 아스팔트 가격은 kg당 260원이었는데, 현재는 460원으로 100% 가까이 올랐다”며 “납품가격도 최소 30% 이상 인상되지 않으면 단체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금속 캔 등을 생산하는 제관업계와 플라스틱업계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한국플라스틱공업협동조합연합회 관계자는 “플라스틱의 원자재는 모두 석유에서 나오는데, 요즘 연일 유가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지 않느냐”며 “‘우리도 단체행동을 하자’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 “비록 파업은 못 하지만…”

연(軟)식품, 내화(耐火), 염색, 알루미늄, 가구, 공구업계 관계자들도 원자재 가격 상승의 고통을 호소했다. 하지만 이들 업계의 기업은 대부분 영세하고, 과당경쟁에 시달리기 때문에 단체행동 가능성은 낮다.

한국연식품공업협동조합연합회는 “콩 값이 1년 동안 90% 정도 올랐다”며 “대기업이나 유통업체에 납품하는 제품 가격을 올려야 하지만, 업체 간 과당경쟁 때문에 그러지도 못해 이익만 깎아먹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수입하는 원자재 비중이 높은 회사는 물량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한국내화물공업협동조합은 “보크사이트 등 내화 원재료의 80%는 중국에서 수입한다”며 “최근 가격이 뛸 뿐 아니라 품귀현상까지 일어나 물량 확보가 힘들다”고 고충을 호소했다.

한국염색공업협동조합연합회는 “염료의 90%를 중국에서 수입하는데 1년 사이 50% 정도 원재료 가격이 올랐다”며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중국이 자체 수요를 우선적으로 충당하면서 염료 자체를 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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