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계 “사제단, 오해받는 일은 없어야” 사태 주시

  • 입력 2008년 3월 8일 02시 52분


“증거 제시없이 김용철씨 주장에만 의존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보일수도” 우려 많아

“조롱 감수한 사제단 용기에 박수” 옹호도

“주교단, 교계 내분 우려 공식대응은 자제”

■ 정의구현사제단 삼성의혹 폭로방식 싸고 논란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사제단)은 1970,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1987년 서울대생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폭로한 성명서는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면서 국민의 기억 속에 각인됐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가진 사제단이 지난해 10월 이후 이른바 ‘삼성 로비 의혹’ 규명의 전면에 나섰다.사제단은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을 대선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마다 부분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그 행보를 둘러싼 논란도 거세다. 사제단은 ‘삼성 차명 계좌’ ‘(삼성) 회장 지시사항’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 떡값 수수 의혹’을 연이어 폭로했고 최근에는 김성호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와 이종찬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삼성 관리 대상으로 떡값을 받았다며 실명을 공개했다. 사제단 홈페이지(www.sajedan.org)의 자유게시판에는 이달에만 350여 건의 관련 글이 올라왔다. 이 가운데 사제단을 비판하거나 우려하는 목소리와 사제단을 지지하는 의견의 비율은 7 대 3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사제단의 행보에 대한 두 가지 시각=자유게시판에 올라온 의견 중 상당수는 사제단이 김 변호사가 건네준 ‘떡값 명단’을 갖고 있다가 시기를 조율해가며 폭로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지적한다.

ID ‘참종교인’은 “사제단은 당장 모든 자료와 떡값 명단을 숨김없이 국민에게 공개하고 그 증거에 대한 증명력을 높여가야 한다”며 “오직 김 변호사의 말에만 의존해 행동하는 사제의 모습은 오해의 소지를 낳고 있다”는 의견을 올렸다.

ID ‘구름’도 “김 변호사가 제시한 사실과 증거는 사법기관이 가부를 판단하는 것이지 사제단이 할 수 없는 것”이라며 “사제단은 죄를 짓고도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양심의 불씨가 살아날 수 있도록 진심으로 노력해야지 그들을 죄인이라고 겨누고 손가락질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반면 ID ‘장드레아’는 “우리 모두가 암묵적으로 저질러 왔던 황금만능주의와 비양심의 총체인 삼성 비자금 사태를 (제기하는 사제단에) 돌멩이를 던져서는 안 된다”면서 “온갖 조롱과 돌팔매질을 예상하면서도 나설 수밖에 없었던 사제단의 고뇌에 머리 숙인다”고 했다.

▽평신도 단체의 반응=천주교 평신도 단체나 천주교 외부에서도 사제단의 행보를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평신도사도직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최근 5명이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사제단이 왜 그런 일에 개입하느냐’는 말이 나왔는데, 그중 한 명이 ‘삼성그룹은 특별한 대상이어서 사제들이 나서야 그나마 먹혀들어간다’고 하더라”며 이번 사안을 보는 복잡한 시각을 전했다.

하지만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사무총장은 한 일간지 칼럼에서 “정치권 뺨치는 사제단의 폭로 방식은 40여 명에 달하는 떡값 명단을 필요에 따라 조금씩 흘리는 카드로 사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갖게 한다”며 “삼성특검 수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검찰이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월권”이라고 비판했다.

한 대학생은 “사제단이 폭로의 순수성을 확보하려면 김 변호사가 삼성 로비의 공범으로 받은 대가를 내놓거나 포기하도록 이끌어야 했다”며 “마치 김 변호사를 의인(義人)처럼 보호하는 것으로 비치는 상황도 사제단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사제단의 이번 ‘의혹 제기’를 주도하고 있는 김인국 신부는 7일 KBS1 FM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백운기입니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불법뇌물 수수 명단은 적당한 때가 되면 반드시 제출한다. 그러나 명단을 줘도 수사에 쓰이지 않는다는 불신이 있다. 이미 세 사람의 명단을 줬는데 (특검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 나머지 더 많은 명단을 드리는 것은 사회적인 혼란을 갖고 올 뿐 수사 의지가 없는 기관에 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천주교계의 반응=한 신부는 “천주교 주교단은 사제단의 행보에 우려하고 있으나 좀 더 지켜보자는 방침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천주교가 이번 일에 공식 대응할 경우 내부 의견이 크게 갈라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도권의 한 중견 신부도 “그들(사제단)은 (위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며 “주교단에서 사제단을 제재하면 그 자체가 이슈가 되고, 이로 인해 천주교 내에서 내분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게 더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중견 신부는 “근본적으론 사제단의 현재 활동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게 천주교 고위층의 인식”이라며 “하지만 삼성 비자금 문제를 공론화했다는 공도 있다는 점을 인정해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가톨릭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던 A 씨는 “가톨릭 신자가 500만 명이 넘는 상황에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생각이 일치할 수는 없다”며 “논란이 내부 분열로 이어질 것 같아 서로 조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천주교 내에서는 사제단의 정치적 활동이 지나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적지 않다.

과거엔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했지만 최근 10년간 정권과 가까워진 데다 특정 이념단체들이 주도하는 통일운동이나 경제민주화운동 등에 발을 맞춰 왔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사제단 원로인 송기인 신부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으로, 함세웅 신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함 신부는 2004년 6월민주항쟁 관련 인사 52명을 초청한 청와대 오찬에서 “노 대통령이 (탄핵으로부터) 자신의 복귀를 예수의 부활에 비유하는 말을 듣고 주님으로, 우리 예수로 모셔야겠다고 생각했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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