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에서 예금 채권으로…‘쩐의 U턴’

  • 입력 2008년 1월 23일 02시 51분


5대 은행 예금수신 잔액 올해 7조 넘게 늘어

“펀드 환매 사태 오나” 금융당국 모니터링 강화

코스피지수가 51.16포인트(2.95%) 하락한 21일.

지난해 말 기준 펀드 잔액이 34조4435억 원으로 시중은행 가운데 펀드 판매 1위였던 국민은행에는 1440억 원의 펀드 자금이 새로 유입된 반면 2509억 원의 펀드 환매 요청이 들어왔다. 이에 따라 이날 하루 이 은행 펀드에서 빠져나간 돈은 1069억 원으로 올해 들어 최대 규모였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22일 국내 주요 시중은행과 증권사의 최근 펀드 환매 동향을 긴급 조사한 결과 본격적인 환매의 징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은행 예금과 채권 등 안전자산으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지난해 은행권에서 증시로 흘러들었던 자금이 다시 안전자산으로 회귀하는 ‘머니 유턴’ 현상이 시작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금융 당국은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펀드 대량 환매에 대비해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은행 펀드 잔액 3조 원 넘게 감소

21일 동양종합금융증권의 펀드환매 금액은 1259억 원이었다. 이는 올해 들어 가장 많은 것이며 연초 하루 100억 원 안팎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0배 이상으로 증가한 것이다.

은행권의 펀드 잔액도 크게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신한은행은 펀드 매입(신규+추가 매입) 금액이 432억 원, 환매 금액은 573억 원으로 올해 들어 가장 많은 141억 원의 순(純)유출이 생겼다. 최근 사흘간 신한은행은 계속 펀드 환매 금액이 매입 금액보다 많은 순유출이 일어나고 있다.

이날 국민 우리 신한 하나 외환 등 국내 5대 시중은행의 펀드 잔액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에는 32조9899억 원 증가했으나 올해 18일까지 3조3551억 원이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 ‘돈의 이동’ 시작됐나

지난해 국내 금융시장의 큰 흐름은 은행 예금에서 증시로 투자금이 넘어간 ‘머니 무브(Money Move)’ 현상이었다.

한국증권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예금수신 잔액은 2006년 말 584조6000억 원에서 577조5000억 원으로 줄었다. 반면 펀드,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 고객예탁금, 신용융자액 등을 포함한 자본시장 자금은 2006년 말 265조8000억 원에서 350조3000억 원으로 급증했다. 특히 주식형 펀드로는 한 해 동안 73조9000억 원의 자금이 흘러들었다.

부동산시장이 건설경기 침체로 지지부진한 가운데 주식시장이 활황을 보이자 수익률이 높은 증시로 여유자금이 몰린 것. 하지만 미국 경기 침체 우려로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주식시장이 당분간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자 예금, 채권 등 안전자산으로 돈이 돌아가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예금수신 잔액은 올해 들어 한 달도 안돼 7조4917억 원(21일 현재)이 증가했다. 채권시장으로도 자금이 몰리면서 채권가격 상승(채권금리는 하락)을 이끌고 있다.

외국인의 국내 채권 순매입(매도금액에서 매입금액을 뺀 것) 금액은 21일까지 2조4569억 원에 이른다. 22일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날보다 0.05%포인트 하락한 연 5.35%에 마감됐다.

삼성투신운용 박성진 채권팀장은 “외국인들이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한국 채권투자로 이익을 보기 위해 매입을 늘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채권 전문가들은 당분간 채권가격이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금융 당국 초긴장

주식시장에서의 자금 이탈은 국내 증시의 펀더멘털(기초체력) 자체를 흔들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영증권 이승우 연구원은 “과거 코스피지수가 고점 대비 20%가량 하락했을 때 펀드 환매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점을 볼 때 ‘펀드 환매 사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코스피지수는 지난해 고점인 10월 말 2,064.85와 비교하면 현재 22%가량 하락했다.

펀드 대량 환매는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투신운용 강신우 부사장은 “지난해 국내증시의 상승세를 이끌었던 건 적립식 펀드 자금”이라며 “매달 적금식으로 돈을 투자하는 적립식 펀드의 특성을 고려할 때 집단적인 환매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펀드 환매 등의 시장 불안에 대비해 자체 대책반을 꾸려 집중 모니터링에 착수했다고 이날 밝혔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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