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양 6대주 누비는 한진해운 컨테이너선 승선기

  • 입력 2007년 10월 31일 02시 59분


25일 오전 11시(현지 시간) 홍콩항.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유럽 지역에서 출발한 컨테이너선인 ‘한진로스앤젤레스호’가 눈에 들어왔다.

20피트짜리 컨테이너 4000개를 실을 수 있는 이 배는 길이가 289m로 63빌딩(249m)을 눕혔을 때보다도 더 길었다.

이 배가 50여 일 동안 세계 각지를 누비며 물건을 실어 나르는 것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 ‘MSC(이탈리아)’, ‘K LINE(일본)’, ‘머스크(스웨덴)’, ‘차이나시핑(중국)’, ‘에버그린(대만)’ 등 각국 해운회사의 로고가 박힌 컨테이너들이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 유럽에서 빈 컨테이너 싣고 와

홍이문(45) 선장은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을 울리자마자 다음 기항지인 중국 선전(深(수,천))항에 내릴 컨테이너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 컨테이너들은 유럽에서 가져온 빈 컨테이너들입니다. 선전경제특구 주변의 광둥(廣東) 성 후이저우(惠州) 등 생산 기지에서 쏟아지는 물건들을 싣기 위해서지요.”

중국의 엄청난 수출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운임요금을 받지 못하는데도 빈 컨테이너를 싣고 간다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지난해 선전항에서 처리한 전체 컨테이너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2171만 개로 세계 4위 수준에 이른다.

경력 8년차 1등 항해사인 최철호(32) 씨는 “2000년 배를 타기 시작한 무렵에는 부산항과 선전항에서 처리하는 컨테이너 물량이 엇비슷했지만 지금은 천양지차”라며 “부산항은 물량 면에서는 중국을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에 해운 선사 유치에 힘쓰지 않으면 글로벌 항만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관실로 내려가니 선박 엔진이 돌아가는 굉음으로 귀가 먹먹했다.

하지만 강용기(50) 기관장은 “해운업은 외화벌이의 숨은 역군”이라고 말했다.

옆자리에 있던 임동근(24) 항해사도 거들었다.

“중국에도 삼성전자나 LG전자 공장이 있지만, 저희 배는 대부분 외국 화물을 운송합니다. 세계적인 해운회사들과 국경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지요.”

한진해운 소속 선박들이 이렇게 선전항에 물건을 실어 나르면서 벌어들이는 금액은 하루 100억 원에 이른다.

○ 크리스마스 시즌 맞춰 출항

홍콩항에서 출발한 지 6시간 정도 지나 선전항에 도착했다.

이재민(22) 실습 항해사가 칠판에 ‘도착 시간 25일 오후 4시, 출발 시간 26일 오전 7시’라고 적었다. 컨테이너를 싣고 내리기 위해 선전항에 꼬박 15시간 머무는 셈이다.

하지만 선원들은 선전항에서 머무는 시간이 이것보다는 더 연장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의 각종 규제 등으로 공장이 빠져나가 선전항에서 처리하는 컨테이너 물량의 증가세가 주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한진로스앤젤레스호는 컨테이너 1884개 중 선전항에 670개를 내리고, 673개를 새로 실었다.

새로 실은 컨테이너에는 중국산 가구, 인형, 잡화, 전자제품 등이 담겼다. 이 물건들은 미국의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미국 로스앤젤레스 롱비치와 오클랜드로 향했다.

홍콩·선전=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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